FC 서울

 




'''FC 서울'''
'''FC Seoul'''
<colbgcolor=#b5191a> '''정식 명칭 '''
FC 서울 프로축구단
'''영문 명칭 '''
Football Club Seoul
'''법인명 '''
㈜GS스포츠
'''창단 연도 '''
1983년 12월 22일(41주년)[1][2]
'''구단 형태 '''
기업구단
'''소속 리그 '''

'''연고지 '''
서울특별시
'''구단명 변천 '''
럭키금성 황소 (1983~1990)
LG 치타스 (1991~1995)
안양 LG 치타스 (1996~2003)
'''FC 서울 ''' (2004~현재)
'''연고지 변천 '''
충청도[3] (1983~1989)
서울특별시 (1990~1995)
경기도 안양시 (1996~2003)
'''서울특별시''' (2004~)
'''홈 경기장 '''
서울월드컵경기장 (66,704석)
'''구단 훈련장 '''
GS챔피언스파크
'''라이벌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슈퍼매치'''
'''인천 유나이티드''' - '''경인더비'''
'''모기업 '''

'''구단주 '''
허태수[4]
'''대표이사 '''
여은주[5]
'''단장 '''
강명원
'''감독 '''
박진섭
'''주장 '''
기성용
'''부주장 '''
황현수
'''마스코트 '''
[image]
씨드
'''워드마크 '''
[image]
'''상징색 '''
'''빨간색 ''', '''검정색 ''', '''금색 '''
'''셔츠 프린팅 '''
앞: 자이[6], GS SHOP[7], KIXX[8]
뒤: GS칼텍스[9]
'''공식 웹 사이트 '''
/ / / / /
'''팬 사이트 '''
/
'''우승 기록 '''
'''K리그1'''
[image][image][image][image][image][image]
(6회)
1985, 1990, 2000, 2010, 2012, 2016
'''FA컵'''
[image][image]
(2회)
1998, 2015
'''리그컵'''
(2회)
2006, 2010
'''슈퍼컵'''
[image]
(1회)
2001
'''전국축구선수권대회'''
(1회)
1988
'''클럽 기록 '''
'''최다 출장'''
고요한 - 412경기 (2004~)
'''최다 득점'''
데얀 (Dejan Damjanović) - 184골 (2008~2013, 2016~2017)
'''최다 도움'''
몰리나 - 58도움 (2011~2015)
'''최다 공격포인트'''
데얀 (Dejan Damjanović) - 232 (2008~2013, 2016~2017)
'''한 시즌 리그 최다 승점'''
96점[10] (2012시즌)
'''최다 연속 출장 기록'''
김병지 - 78경기 (2006/03/12–2007/10/14) (2006~2008)
'''최다 연속 무실점 경기'''
김용대 - 5경기 (2013/09/01–2013/09/25) (2010~2015)
'''구단 최초 득점'''
박정일 - 1984-03-01 (vs. 할렐루야 독수리)
'''구단 최초 도움'''
강득수 - 1984-03-01 (vs. 할렐루야 독수리)
'''단일 경기 최다 관중'''
60,747명[11] - 2010-05-05 (vs. 성남 일화 천마)
'''단일 정규시즌 최다 평균관중'''
2010시즌 - 30,849명
'''K리그 단일 시즌 최다 총관중'''
2010시즌 - 546,397명[12]
'''기타 수상 기록 '''
2010 K리그 올해의 베스트팀
2011 K리그 올해의 페어플레이
2012 K리그 올해의 베스트팀
2013 ACL 페어플레이
2014 K리그 올해의 페어플레이
2014 FA컵 페어플레이
2015 FA컵 페어플레이
2017 K리그 올해의 페어플레이
''''''유소년 시스템'''
'''U-18 팀 '''
서울 오산고등학교
'''U-16 팀 '''
서울 오산고등학교/오산중학교
'''U-14 팀 '''
서울 오산중학교
'''U-12 팀 '''
FC 서울 U-12

'''2021 시즌 FC 서울 스폰서'''
'''메인 스폰서'''
'''용품 스폰서'''





1. 개요
2. 역사
3. 클럽 상징색
4. 클럽 로고
5. 유소년 시스템
6. 이모저모
6.1. 경기력 면에서
6.2. 흥행 면에서
6.3. 명실상부한 K리그의 소년가장
7. 라이벌
8. 역대 시즌
9. 역대 감독
10. 역대 주장
11. 코칭 스태프 명단
12. 선수 명단
13. 등번호별 상징적인 선수들
14. 역대 캐치프래이즈
15. 시설
15.1. 홈 경기장
15.2. 클럽하우스
15.3. FC 서울 팬파크
16. 유니폼
17. 사건사고
18. 관련 기록
19. 팬덤
19.1. 규모와 인기
19.2. 응원단
19.3. 서포터즈
19.4. 온라인 팬 커뮤니티 - FCSEOULITE
19.5. 네임드 팬
20. 프런트 성향
20.1. 내부정보 통제
20.2. 구두쇠 프런트
21. 그 외
22. 직관 관련 팁
22.1. 경기장 관련
22.2. 티켓 구매 관련
22.3. 좌석 관련
22.4. 응원 관련
22.5. 기타
23. 관련 문서
2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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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하는 K리그1 소속의 프로축구단. 홈구장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이다. 모기업은 GS그룹이며, '''한국 프로 스포츠 단일 경기 최다 관중 기록[13]을 달성한 구단'''이다.
K리그1 통산 6회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전통의 강호 구단으로, K리그1 우승 횟수 3위[14]를 기록하고 있으며, '''K리그 한 시즌 최다 승점, 승리 기록'''[15]을 가지고 있다.

2. 역사



'''FC 서울의 연고지 역사'''
<rowcolor=#a38848> '''기간'''

'''1984 ~ 1989
(총 6년)'''

'''1990 ~ 1995
(총 6년)'''

'''1996 ~ 2003
(총 8년)'''

'''2004 ~ 현재'''
'''연고지'''
충청도[16]
서울특별시 (동대문)
경기도 안양시
'''서울특별시 (마포)'''

3. 클럽 상징색


  • FC 서울을 상징하는 색상은 빨간색, 검은색, 금색이다. 주로 빨간색과 검은색을 같이 사용하는 '검빨' 또는 '빨검'의 형태로 사용된다.
  • 클럽 상징색의 코드가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로고 파일을 다운로드받을 때 같이 있는 메모장 파일 안에 적혀 있다.
'''FC 서울 상징색 코드 '''
색상
RGB
(헥스 코드)
CMYK
Pantone
Red
'''R181 G25 B26 '''
(#b5191a)
'''C0 M100 Y100 K10 '''
'''Pantone 1795c '''
Black
'''R0 G0 B0 '''
(#000000)
'''C0 M0 Y0 K100 '''
'''Pantone black c '''
Gold
'''R163 G136 B72 '''
(#a38848)
'''C30 M40 Y100 K0 '''
'''Pantone 873c '''

4. 클럽 로고


  • 경기 설명 문서나 틀을 만들 때와 같이 문서 작성을 하는 것에 있어서 배경 색을 넣어야 할 때 다음과 같이 색상이 다른 로고를 사용할 수 있다. 붉은색 바탕이면 글씨가 흰색인 로고를, 검은색 바탕이면 글씨가 붉은색이지만 하단부 숫자 부분이 흰색인 로고를 쓰는 방식처럼 사용할 수 있다. 최근 구단이 SNS에서 주로 사용하는 로고 색상은 하단 표에 있는 붉은색 바탕에 사용될 수 있는 로고이다.
'''FC 서울 로고 '''
[image]
[image]
[image]
[image]
'''흰색 '''
'''붉은색 '''
'''검은색 '''
'''회색 '''

5. 유소년 시스템


'''유소년 시스템'''
'''U-18 팀 '''
서울 오산고등학교
'''U-16 팀 '''
서울 오산고등학교/오산중학교
'''U-14 팀 '''
서울 오산중학교
'''U-12 팀 '''
Future of FC Seoul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축구부로 유명했던 동북고등학교와 유스 협약을 맺어 동북고등학교 축구부가 FC 서울의 유스로 운영되었다. 2008년에는 손흥민이 동북고로 진학하게 되면서 서울의 유스로 소속된 적이 있었다. 2013년 FOS를 도입하면서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유소년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같은 해 오산학원에 산하 유스팀을 직접 창단하며 유스 시스템을 제대로 가춰가고 있었다. 2016년 FOS 출신이자 차범근 축구상 대상 수상자인 서재민이 오산중으로 진학하는 등 유스 시스템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오산중학교는 2016년 전국대회 우승, 오산고등학교는 2017년 K리그 주니어 후반기 리그 A조 우승 등 괜찮은 성적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의 유스 출신으로서 FC 서울 1군에서 뛰고 있는 선수는 황현수와 차오연 등이 있다.

6. 이모저모



6.1. 경기력 면에서


전북과 함께 2000년대 후반에 떠오른 신흥강호. 2000년대 초반까진 성수울포에 밀려 강호 이미지는 없었고 하위권이었던 시절이 길었다. 3차례 우승을 거두긴 했으나 기틀이 잡히지 않았던 시절이라 시즌별로 경기력 변동이 심했다. 85년은 프로팀과 실업팀이 혼재한 형태였고(프로 6팀, 실업 2팀) 86년 추계리그 우승으로 강팀으로 남나 싶더니 87년 5개 팀 중 5위, 88년 5개 팀 중 4위를 기록하며 심한 기복을 보였고 팀이 6개로 늘어난 89년 2위에 이어 1990년 우승을 차지했으나 다음해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으며 92년 3위, 93년 2위를 제외하면 90년대 내내 하위권에 머물렀다. 2000년에 그룹의 대대적인 투자로 우승을 차지했으나 다음해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했다.(1->2->4->8)
잃어버린 옛 연고로 돌아온 이후 반전이 시작되어 세뇰 귀네슈-넬루 빙가다 시기로 모기업 GS그룹의 풍족한 지원, 프런트의 착실한 플랜, 서울 프리미엄에 힘입어 강호로 급부상했다. '''2007년 이후의 서울 팀컬러는 세뇰 귀네슈최용수의 역사다.'''
2007~2009년 귀네슈 감독 시절에는 이청용, 기성용을 중심으로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고 준수한 미드필드 진을 필두로한 빠르고 짧은 패스축구를 구사했다. 경기 당 한번씩은 꼭 공을 받지 않고 흘리거나 다이렉트로 뒤로 차주는 플레이를 펼쳐보이는게 특징. 빠른 패스와 공수전환으로 전방에서 부터 압박해 치고 올라가기 때문에 K리그 전체에서 오밀조밀하고 재밌는 축구를 보여주었다. 때문에 서울이 '''K리그의 아스널''' 같다는 평가와 함께 많은 축구팬들을 매료시켰다. 그 시절 국가대표급 중앙 수비진을 보유했지만 한때 중앙 수비수들의 실책으로 인한 실점이 많은 편이었으며,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스쿼드는 패기넘치고 창의적인 전술을 펼치는 데에는 큰 장점이었지만 반대로 분위기에 쉽게 휩쓸려 경기력 기복이 심해질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었다. 이을용, 김한윤 등 노장선수들도 굉장히 거칠고 쉽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베테랑 선배로서 모범을 많이 보여주지 못하였다. 특히 2008, 2009년 시즌을 무관으로 보낸 것은 이 점이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2010 시즌에는 베테랑들이 많이 합류하고 기존의 젊은 선수들과 환상의 조화를 이루어 조직력을 쇄신하면서 귀네슈 감독 때의 문제는 거의 사라졌다. 그 해 홈경기는 개막전인 전북 전을 제외하고 모두 승리하였고 시즌 내내 훌륭한 경기력을 이어가면서 컵대회와 K리그 더블 우승을 일구어내었다.
빙가다 감독이 1년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황보관이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는데 2011년 시즌 초반부터 극심한 부진을 겪게되면서 K리그 최단기간 부임이란 불명예를 안고 자진사퇴하게 된다. 그 해 4월 부터 수석 코치였던 최용수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시즌을 책임졌는데 하위권이었던 리그 성적을 3위로 마무리하고 조별리그 탈락위기였던 AFC 챔피언스리그도 8강까지 이끌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시즌 도중 2010년까지 벤치멤버였던 고명진, 고요한 등을 스타 플레이어로 키우면서 팬들에게 지지를 얻고 2012년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2012년에는 2011년 검증했던 데얀몰리나(극강의 경기력을 보여준 이 둘의 조합은 '데몰리션'으로 불리움)의 공격 조합과 하대성고명진, 최현태 등이 이루는 안정적인 중원에, 미드필더에서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보직 변경에 성공한 고요한 등의 맹활약으로 '''K리그 역대 최다 승점'''으로 2년만에 우승컵을 탈환에 성공한다. 하지만 최용수 감독 본인이 고집하는 주전 선수들만 기용하면서 유망주들이 기회를 얻지 못했고, 수원에게 패배하는 징크스가 계속되면서 팬들에게 시즌내내 질타를 받기도 했다.
2013 시즌은 서울 축구에 커다란 전기이기도 했는데 본격적인 쓰리백 전향이 시도된 시기다. 유로 2012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안토니오 콘테의 쓰리백에 영향을 받은 최용수의 쓰리백 이식 시도는 2012시즌 약체팀을 상대로 처음 시도되었다.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 없이 하대성과 고명진으로 중원을 구성하고, 쓰리백에는 아디-김진규-김주영이 섰다. 구성원들의 이름값은 대단했지만 선수들의 전술이해도가 낮아서 이내 접었다. 초반 7경기 연속 무승의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어느정도 반등에 성공한 2013시즌 중반 한동안 수면에 가라앉아 있던 쓰리백 전환이 재시도된다. 이때는 가진 자원을 100% 활용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는데, K리그 역대최고의 측면 수비자원이자 센터백으로도 정상급인 아디와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 고군분투하던 대표팀에서 쏠쏠한 활약을 해준 김치우, K리그 수위급 센터백 김진규와 김주영. 포백 체제에선 이 4명중에 한명은 벤치로 가야했는데 이들 모두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쓰리백을 포백과 병행했다. 다만 여전히 포백을 주로쓰면서 병행하는 정도였다.
2014시즌은 서울의 전력에 큰 변화가 닥친 해였다. 시즌전부터 서울의 전력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가장 큰 문제는 데얀의 이적이었다. 7년간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활약하며 K리그 외국인 선수 통산 최다골, 역대 최다골 2위에 오른 레전드 데얀의 빈자리는 기존 선수진으론 메우는게 불가능했다. 3시즌동안 데얀과 콤비를 이뤘던 몰리나는 리그와 아챔을 병행하며 지나치게 혹사당하고 노쇠화까지 겹쳐서 13시즌 후반기부터 폼이 뚝 떨어졌다. 2014시즌 외국인 선수 가운데 연봉 1위라는 비싼 몸값때문에 처분하는 데 실패. 그리고 무릎 부상으로 전반기를 사실상 공치게 되었다. K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인 수비수라는 찬사를 받은 아디도 2013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여기에 미드필더진에서 빌드업을 책임졌던 주장 하대성마저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하면서, FW-MF-DF 세 라인에서 핵심 선수가 고스란히 팀을 이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남아있는 네임드는 차두리, 고명진, 김진규, 김용대 정도였고 나머지는 폼이 하락했거나 주전경쟁에서 밀렸거나 아니면 아직 경험이 부족한 유망주들이었다.
팀 내외에서 우려가 쏟아지는 상황, 최용수는 시즌전 2014년을 3백 체제로 운용할 것임을 천명했다. 이를 위해 대전에서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하며 쓰리백과 포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이웅희를 영입하고 외국인 슬롯 하나를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가 모두 가능한 장신 수비수 오스마르로 채웠다. 아디는 떠났지만 기존의 고요한과 김치우,새로 영입된 차두리, 전역한 최효진까지 수준급 측면 자원들을 보유하고 있어 아주 불가능하진 않아 보였다. 그러나 선수들이 생소한 쓰리백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전반기 서울은 총체적인 난국에 부딪치게 된다.
김치우와 차두리(최효진)이 좌우에 서고 오스마르-김진규-김주영이 쓰리백을 형성했는데 왼쪽에선 김치우와 오스마르는 발밑이 부드럽고 킥이 좋지만 발이 느렸고, 오른쪽의 차두리와 김주영은 발 빠르고 경합능력이 좋았지만 기술이 떨어지고 세밀하지 못했다. 완전히 상반된 선수끼리 묶이면서 좌우의 균형이 무너졌고, 정중앙의 김진규도 발이 느려서 이 간극을 메워주지 못하고 본인이 집중력을 잃어버렸다. 여기에 중원은 중원대로 하대성의 공백을 못메워서 볼순환이 안되었다. 시스템에 녹아들지 못한 윙백들이 무작정 뛰는걸로 보완하려다 보니 체력소모도 극심해 후반전만 가면 양쪽 측면이 무너져 내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상황이 너무 안좋다보니, 리그 2경기와 아챔 3경기도 총 5경기를 치른후 오스마르를 미드필더로 올리고 포백으로 회귀했다. 그대로 실패한 실험이 되나 싶었으나 14년에는 월드컵 브레이크라는 기회가 있었다. 월드컵 브레이크로 재점검 기회를 얻은 선수들의 쓰리백 이해도가 올라가고, 전반기까지는 센터백, 풀백 양쪽에서 애매하다는 평을 듣던 이웅희가 14년 7월 9일 포항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김주영 대신 출전해 탄탄한 수비력을 보이며 단숨에 치고 올라왔으며 좌우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고광민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시즌 초반 쓰리백 실패 이후 미드필더에서 뛰던 오스마르를 계속 그 위치에 놓고, 김주영-김진규-이웅희로 쓰리백을 고정. 중앙의 김진규와 오스마르가 빌드업과 조율을 담당하고 왼쪽에 김치우보다 킥은 떨어지지만 한결 젊고 빠른 고광민이 들어왔다. 고광민과 차두리가 적극적인 오버래핑을 가져갈때 생기는 뒷공간을 김주영과 이웅희, 발 빠르고 수비범위 넓은 두명의 파이터가 훌륭하게 채워주어 균형이 맞아들어가 마침내 쓰리백이 뿌리내렸다.[17]
14시즌이 끝나고 김주영이 중국으로 떠나고, 김진규의 노쇠화가 표면에 드러났는데 포멧은 전해와 다르지 않게 가져가면서 사람만 바꿨다. 김주영의 빈자리는 군복무를 마친 김동우와 No.4~5 센터백 정도의 위상이었다가 14년 여름부터 조금씩 기회를 받기 시작한 김남춘이 메웠으며 김진규의 노쇠화는 오스마르를 밑으로 내리고, 신예 박용우에게 전폭적인 기회를 제공해 메웠다. 15시즌엔 오스마르와 박용우가 경기중에 위치를 바꾸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변화가 찾아온 건 16시즌. 이웅희의 입대로 발빠른 스토퍼가 한명도 남지 않았다. 남은 김동우와 김남춘은 발밑이 부드러워 빌드업에 기여할 수 있었지만 속도와 경합능력, 수비범위는 나쁜건 아니지만 한없이 평범했다. 그래서 경기 템포 자체를 느리게 가져가면서 공격 전개 방식을 바꿨다. 기존에는 쓰리백의 중앙에선 선수(김진규, 오스마르, 박용우)가 빌드업을 주도했는데 16시즌에는 좌우 스토퍼로 오스마르와 김동우를 세우고 빌드업과 오버래핑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중앙에는 인천에서 임대 복귀한 김원식을 세워서 뒷공간 커버와 경합 같은 수비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게 했다. 수비진과 미드필더 사이를 잇는 역할은 부산에서 넘어온 주세종이 맡았다. 오스마르보다 더 빠르고 활발한 대신 수비와 경합능력이 떨어지는 단점은 후방에서 수비에만 전념하는 김원식의 지원으로 보완했다. 앞뒤로 주세종과 김원식을 두고 자유로워진 오스마르는 서울 입단 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황선홍과 이을용으로 이어지는 암흑기가 끝난 19시즌에는 오스마르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복귀, 신예 김주성이 쓰리백의 중앙에서 빌드업에 관여하고 좌우 스토퍼로 이웅희와 김원균이 서는 스리백을 구상했으나 김주성과 오스마르가 시즌을 앞두고 부상당하며 엎어졌다. 김동우는 18시즌 종료 후 계약만료로 떠나고 김남춘은 18시즌 말미에 십자인대 파열로 긴 재활에 들어가, 빌드업 가능한 수비수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당초 백업이었던 정현철과 황현수가 기회를 잡았는데 둘 다 빌드업에 강점이 있는 선수는 아닌데다[18] 강한 피지컬로 버티며 중원과 전방을 연계시켜 줄 수 있는 페시치마저 부상으로 못나와서 공격작업이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진행되었다.
오스마르가 4월에 부상복귀하면서 개선은 되었으나 역으로 오스마르만 조지면 된다고 생각한 상대팀이 온갖 폭력을 자행하면서 오스마르의 코뼈는 성할날이 없었다. 정현철이 빌드업 보조로 오스마르를 지원하고, 좌우 스토퍼들이 적극적으로 오버래핑을 해서 황현수가 공격 포인트를 제법 쏠쏠하게 쌓는 수확이 있었으나 김원균은 5월 25일 포항전 전반32분 부상으로 시즌 아웃, 이웅희는 5월 19일 상주전에서 부상 이탈했다 6월 22일 대구전에 복귀했으나 완전히 하락세, 김원균의 부상으로 기회를 잡아 한동안 주전으로 나선 김원식도 경합, 헤딩, 속도 무엇하나 되지 않는 심각하게 부진으로 수비진이 완전히 무너졌다. 설상가상 프런트가 최용수 감독의 영입요구를 모두 무시해서 한 여름에 로테이션도 없이 뛰어야 했던 윙백 윤종규와 고광민이 지쳐 퍼지면서 측면도 붕괴되었다.
보다 못한 최용수 감독은 라인업에 변화를 줘서 신예 김주성을 왼쪽 스토퍼로, 오스마르는 다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고정, 미드필더 정현철을 스위퍼로 기용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쓰리백 정착 이후 공격진 운영에 있어 주된 특징은 윙 포워드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용수식 쓰리백에서 측면은 철저히 윙백들이 전담한다. 서울의 측면자원들은 윙백을 소화할 수 있는 수비력을 갖추던가, 활동량과 조율능력을 키워 중앙에 서던가, 이도저도 아니면 최전방에 빠른 발 믿고 투톱으로 서게 된다. 직선적인 윙포워드 윤일록은 최용수 체제에선 투톱으로 선적도 있고, 기용은 많이 되었으나 황선홍 시절만큼 좋은 생산력을 보이진 못했다.

6.2. 흥행 면에서


팀 운영, 마케팅 여러 면에서 K리그에서 제일 적극적인 구단이기도 하다.[19] 2005년 박주영을 내세워 스타 마케팅을 실시했고 다양한 팬 친화적인 이벤트를 선보이면서 광활해 보이던 서울월드컵경기장 좌석이 서서히 채워지기 시작했고, 빅매치 시에는 4~5만명의 관중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구단 웹 사이트를 비롯해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여러 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고 페이스북은 K리그 최초로 '''좋아요 10만명'''을 돌파했다.
2012년 조사된 전 세계 축구클럽 브랜드 가치평가에서 62위를 차지했으며, K리그 클럽 가운데서는 단연 1위였다. 2015년 9월 1일 아시아 축구 연맹이 발표한 클럽 랭킹에서는 89.665점으로 4위에 이름을 올렸다.
K리그 관중 동원 실적에서도 몇 년째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있는데 2010~2012년 3년 연속 K리그 평균관중 1위를 차지했다. 2013년에는 총 관중수 1위를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게 내줬지만 이는 관중 동원 전략을 무료표를 줄이고 객단가를 높이는 방향으로 잡았기 때문으로, 실제로 2013년 유료 관중 비율(85%)와 객단가(6452원)에서는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총 입장 수익 또한 20억원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고 이는 2013년 K리그 클래식 전체 입장 수익중 1/4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2015년 10월 25일 '''K리그 최초 6년 연속 300,000 관중 돌파'''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또한 2015 시즌 K리그 최초로 객단가[20] 9,000원을 넘었다. 비공개된 2위 구단(6,058원)과의 격차가 크며, 유료관중 숫자와 입장수입 역시 K리그 1위이다. 2016년부턴 전 구단 최초로 100만원짜리 시즌권을 출시했다.[21]
  • FC 서울 팬파크 : 2016년은 마케팅 면에 있어서 다시 없을 역대급 시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홈 개막전을 앞두고 2월 28일 경기장 앞에 FC 서울 팬파크라는 공식 팬 샵을 오픈했다. FC 서울 유니폼, 선수단, 일반 의류는 물론 응원도구에 예전에 품절된 머플러까지 판매하고 서울이 수상한 트로피도 전시되어 있다. 홈경기 날 외에도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영업하기 때문에 그동안 FC 서울 물품을 오프라인으로는 홈경기 당일밖에 구매할 수 밖에 없었던 불편함을 해소해 주었다. 자세한 설명은 문서 참조.
  • FC 서울 팬카페 : 2016년 7월 30일에 팬 파크 옆에 커피숍 FC 서울 팬카페를 개장했다. 연중무휴로 운영되기 때문에 서울 팬 뿐만 아니라 월드컵경기장을 방문하는 일반인들도 많이 방문할 듯하다.
  • FC 서울 푸드파크 : 또한 경기 전후로 관객들이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FC 서울 푸드파크를 개장했다. 경기 종료 후 약 1시간 반 동안 음식 주문을 받는다. 메뉴 종류는 경기마다 달라지나 피자, 스테이크등 일부 품목은 변함없이 계속 판매중이다. 아사히 맥주의 경우 경기 종료 후에만 판매한다.
2016년 시즌에는 10,287원으로 '''객단가 만원을 돌파했다.''' 2015년의 9,485원보다 800원가량 높아진 금액이다. 평균 관중(18,007명)과 리그 입장수입(35억)에서도 전체 1위를 차지했다. FA컵과 AFC 챔피언스리그 입장수입까지 합친 전체 입장수입은 50억 가량이다.
2019년에는 평균관중 17,061명을 기록하며 13,937명의 전북 현대, 10,734명의 대구 FC, 9,692명의 울산 현대 등을 앞지르고 1위를 기록했다. 참조

6.3. 명실상부한 K리그의 소년가장


서울이 연고지니 당연한 거 아니겠냐 하겠지만, 이는 '''과거''' GS스포츠 스포츠행정가들의 유능한 점을 몰라보고 하는 말이다. 똑같은 서울 연고지 축구팀인 서울 이랜드 FC서울 유나이티드가 사실상 망하기 직전임을 생각해보면 한웅수를 위시로 했던 GS스포츠의 마케팅 능력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GS스포츠 프런트가 유능한 건 어디까지나 예전의 이야기. 2018년과 2020년 등 성적이 제대로 곤두박질치는 최근에는 어지간한 K리그2 팀보다도 지지부진한 선수 영입과 리얼돌 사건 등 외적 문제까지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고 평가받는 수준이다.
근데 사실 이것뿐만 아니라 FC 서울은 K리그 전체의 흥행을 책임지는 중역을 맡고 있다. 왜냐하면 FC 서울이랑 엮이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머지 K리그 팀들에겐 상당한 흥행카드이기 때문. FC 서울 다음으로 K리그 최고 인기팀인 전북 현대수원 삼성의 경우, 이들은 현대자동차삼성전자의 엄청난 투자가 있었던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스포츠계에서 북패라며 심심하며 까이던 공공의 적 FC 서울의 라이벌을 자처했던 탓도 있다.[22] 북패를 정의구현한다는 이미지가 엄청난 홍보효과가 있었단 얘기...심지어 K리그 최고의 명문구단 포항 스틸러스조차 처음엔 FC 서울과 엮이기도 싫어하다가 최근 들어서는 FC 서울의 흥행 가치를 인정하고 검빨동맹, 검빨더비 등 FC 서울을 자신들의 흥행카드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결국, K리그 구단 전체가 FC 서울을 싫어하는 듯하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FC 서울을 흥행카드로 자주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해당 팀 팬들이 엮이기 싫어하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FC 서울의 인기가 크다보니 연맹이나 언론에서 흥행을 위해 엮을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FC 서울은 좋게 말하면 '''K리그의 욕먹는 소년가장''', '''안좋게 말하면 동네북'''이라 말할 수 있다(...)

7. 라이벌


축구 팀들 중 사이가 좋은 팀들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수도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하고 있어 K리그에서는 흥행 면에서 따라올 팀이 없다는 점과 상술한 복잡한 연고지 이전의 역사 때문에 FC 서울은 K리그 대부분의 팀들이 반쯤 왕따시키는 공공의 적 포지션이었다. '''2016년 전까지는.''' 2016년, K리그 전체를 뒤흔든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이 터지고난 후에는 이 포지션이 전북에게로 상당 부분 넘어간 상태.

7.1.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슈퍼매치


경기 내외를 가리지 않고 제일 치열하게 다투는 팀이 바로 수원이다. 그들 말로는 "서울을 존재하지 않는 구단으로 취급한다."고 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천상 라이벌(...). 웹툰작가 샤다라빠는 이 두팀의 관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로를 라이벌로 인정하지 않는 라이벌'''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서울과의 라이벌 구도 형성 과정을 살펴 보면 FC 서울의 연고 복귀 당시 K리그 서포터 집단 가운데 세력이 크면서 강성했던 그랑블루가 극렬한 반대와 비난을 퍼부어 댄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실제로 그랑블루는 패륜송을 만들어 부를 정도로 서울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을 해왔고 그것이 양 팀 서포터들 간의 앙금으로 남아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다.
물론 슈퍼매치가 사실상 과거 안양 LG와의 라이벌 관계가 이어져온 것이지만, 수원 입장에서는 서울을 라이벌로 인정한다면, 안양 LG와 서울을 동일한 구단으로 보고 안양 시절 역사를 서울 역사의 일부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23] 그래서 프렌테 트리콜로는 서울을 라이벌로 칭하는 언론 보도등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하며 'FC GS', '난지도', '마포 GS'등으로 조롱하며 논다.[24]
당연히 서울 팬들에게도 상당한 적대감을 불러일으켜서 양 팀 서포터 간에 여러 차례의 사건과 충돌이 벌어져왔다. 대표적으로는 수원 팬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불을 지르고 안양 LG팬을 사칭하며 추태를 보여준 일명 '''서울월드컵경기장 방화사건'''이랑, 2군 경기에서 한 서울 팬이 안정환에게 심각한 인격모독적인 발언을 했던 유명한 '''권오크 사건'''이 있다.
최근 들어 물리적 충돌은 최대한 서로 피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신경전이 치열한데 슈퍼매치가 다가오면 양 팀 팬들이 게시판에서 서로를 강하게 도발한다.[25] 2010년에는 수원 원정에서 수원 서포터 중 몇몇이 장외 서포팅을 하고 욕설을 하면서 PVC 파이프로 사람을 찌르는 행위도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보듯이, 양 팀 팬들은 서로를 라이벌을 넘어 무조건 '''박살 내야할 상대''' 수준으로 보고 있다.
2012년 까지 전적에서 서울이 약세를 보였던 거의 유일한 팀이다. 2008년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을 넘겨주고 윤성효 시절에는 수원에게 '''9연속 무승 (2무 7패)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서정원 감독 부임 후 이전까지 절대적 열세였던 분위기에서 반전하여, 2014년 4월 27일 K리그 클래식 10라운드 수원 원정경기에서 2008년 10월 29일 이후 5년만에 승리를 거두는 등 13, 14, 15, 16시즌 도합 15전 8승 4무 3패(2016년 8월 기준)으로 속수무책인 옛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차범근의 장기집권과 윤성효의 중도경질로 수원 육성체계가 무너진 상황이라 한동안 수원의 열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박주영은 2007년 3월 21일 열린 슈퍼매치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고[26] 슈퍼매치 단일 경기에서 최다골 기록이 되었는데 오랫동안 깨지지 않고 있다가 2015년 11월 7일에 윤주태가 4골을 터트리면서 8년만에 깨지게 되었다.
2016년을 앞두고 두텁게 전력을 보강한 서울과 달리 수원은 차범근 시절부터 육성체계를 무너뜨리고 돈으로만 성적을 내왔던 부작용이 차곡차곡 쌓이다 터져서 단기간에 수습하는게 어려워져 2016년 슈퍼매치는 서울이 상당히 유리해질 것으로 보였으나 4월, 6월 2경기는 1대 1 무승부로 끝났지만 8월 13일 경기에서는 윤일록의 결승골로 서울이 승리하였다. 하프타임 때 서울의 초대가수로 온 전인권과 '걱정말아요 그대'를 부르는 시간을 갖는 도중 프렌테 트리콜로 쪽에서 패륜송으로 훼방을 놓으면서 트러블이 일어나기도 했다.
수원이 하위스플릿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2016 K리그 클래식의 슈퍼매치는 3경기로 끝났지만, FA컵에서 서울과 수원이 결승에서 격돌하면서 2경기가 추가되었다. 이 경기에선 1승 1패씩 주고받은 다음 승부차기에서 수원이 승리해 양 팀은 17시즌 개막전에서 맞붙게 되었다.
그 이후 K리그 역사에 있어 오래도록 회자될 만한 이적이 발생한다. 바로 서울이 이상호를 영입한 것이다. 수원과의 홈 개막전, 서울은 전반 수원 이적생 김민우에게 선제골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후반 서울은 이석현을 교체투입하면서 승기를 잡았고 세트피스 혼전 상황에서 이상호의 득점 덕분에 1-1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이 후 2경기는 수원의 홈구장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되었다. 이 경기에서 서울은 2-1, 1-0으로 짜릿한 승리를 거두면서 현재 슈퍼매치전적 2승 1무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상호는 3차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미친 활동량을 보여주며 승리에 공헌했다. 이후 수원 서포터즈석에 인사를 하러 갔는데 물병이 경기장으로 반입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의 경기에서 2:2로 비기며 서로 아쉬운 결과를 받아들게 되었다.
하지만 1년 후 서울에서 뛰던 데얀이 수원으로 이적을 했다! 이상호보다 더 충격적인게 서울에서 MVP랑 득점왕을 먹고 레전드라고 불리는 선수인데 수원으로 이적을 하게 된 것.
그리고 2019년 6월16일(일) 경기 이후로 리그+리그컵 합친 기준으로 상대 전적이 역전 되었다. 32승 23무 33패. 이 경기를 기점으로 서울이 한번 더 이기면 전체 슈퍼매치 승률을 동률로 만들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수원 원정으로 치러진 시즌 마지막 슈퍼매치[27]에서 박주영의 PK골과 고요한의 크로스를 받은 이명주의 헤딩골을 엮어 2:1 승리를 거두면서 효멘 시절만 해도 머나먼 것으로 느껴졌던 전체전적 동률과 최근전적 절대우위가 실현됐다.

7.2. 인천 유나이티드 - 경인더비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 간의 거리가 가까운 것도 있고, 양 팀 서포터들의 충돌로도 유명하다. 실제로도 수원과 더불어 FC 서울에 가장 큰 적대감을 드러내는 구단이기도 하다. 이에 맞서 서울 팬들은 인천을 '개랑 2중대'라 폄하하기도 한다. 요즘은 매북 2중대...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가 양쪽 서포터들이 K리그에서 극성으로 유명한지라 물리적 충돌사건이 꽤 많다. 한 때는 경기가 있을 때마다 최소 한 번 이상 폭행 사건이 벌어질 정도였다. 제일 유명한 것은 인천 서포터의 욕설과 도발에 서울 서포터가 철창너머의 인천 서포터들을 깃발로 찔러서 문제가 된 '''콕콕신 사건'''등, 두 구단 사이가 점점 나빠지면서 요즘은 정말로 치열해졌다. 맞붙을때마다 1년에 한번 이상은 서포터 간 충돌은 기본사항이 되었다. 게다가 2017년에 서울팬들이 인천 원정을 갈 때면 2018 경인더비 with.이랜드라는 깃발을 걸어 인천을 조롱하기도 했다. 근데 정작 서울이 갈뻔..
'''그래서 양 팀 서포터들 중에 슈퍼매치를 언론들이 억지로 만들어낸 더비라고 폄하하고, 경인 더비야말로 진짜 더비 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28]
거의 항상 상위권에 위치하는 서울과 주로 중위권을 기록하는 인천 간의 경기이지만 맞붙으면 꽤 팽팽한 경기가 펼쳐진다. 다만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서울이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10월 31일[29]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5년 대한축구협회 FA컵 결승전에서 서울이 인천 유나이티드를 3대1로 제압하고 1998년 이후 17년만에 FA컵 우승을 들어올리면서 극적인 경인더비를 연출하였다. 2016년에는 김도훈 감독의 사퇴로 최악의 분위기였던 인천이 이기형 감독대행 체제에서 어려운 경기가 예상되던 서울전을 승리로 장식하여 자력으로 잔류를 확정짓는 발판으로 삼았다.
양 구단은 사이가 나쁘지만 의외로 선수 왕래가 활발하다는 점이 재미있다. 데얀, 이재권, 이석현, 유현(축구선수)이 인천에서 서울로 이적했고 김원식은 인천으로 임대 가서 크게 성장했다. 조수혁, 이규로, 김동석은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적했다. 자금력 차이가 꽤 되는 양팀임에도 현금 20억 원+이정열, 김태진과 맞바꿔 이적한 데얀을 제외하면 인천이 손해본 이적이 없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
2020년 10월 31일 코로나19로 인한 부분적 유관중 시행 도중, 2020시즌 K리그1의 마지막 라운드가 상암에서 경인 더비로 치뤄지게 되었다. 이 경기에서 인천은 무조건 승리해야 다이렉트 강등에서 벗어날수 있는 상황이었고, 고로 서울 구단에서 원정석을 개방하지 않았음에도 원래 원정석으로 쓰던 S석 쪽에 수많은 인천 팬들이 자리했다. 이날 경기 전날 서울의 김남춘 선수가 갑작스레 사망해 서울팬들은 전체적으로 추모 분위기였고, 신경이 매우 날카로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날 S석에 자리한 인천 팬들이 인천 선수들이 잘할때 박수를 치며 응원하는 등 원정팀을 계속 서포팅하고, 전반 4분의 김남춘 추모를 위한 기립박수때는 조용하게 있고, 경기가 끝나고 나서는 서울 선수들이 센터 서클에서 모여 눈물 흘리는 동안# 김도혁 등 인천 선수들이 잔류를 자축한다면서 원정을 온 인천팬들과 노닥거리는 모습까지 본 서울팬들은 말 그대로 인천을 '''짐승만도 못한 역겨운 놈들이라며 증오'''하게 되었다.[30] 이날 부로 양팀간의 관계는 "라이벌"이 아닌, 끝장을 내버려야하는 '''"적"'''이 확실하게 되었다. 사실 서울과 인천이 양팀을 적으로 인식했던 사건은 2008년 10월에 있었던 대규모 충돌이었다. 일명 문학대첩이라고 불렸던 이 사건은 경기부터 팬, 프런트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마찰이 발생하면서, 안그래도 사이가 나빴던 서울과 인천의 관계를 완전히 끝내놓은 사건이었다. 다만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뉴비팬들이 유입되었고, 이 사건을 겪었던 팬들도 나이 먹으면서 조용히 경기를 보는 쪽으로 변화해서 그 점점 묻혀갔던 것. 하지만 2020년 이 사건으로 뉴비팬들 사이에도 적대감이 심어졌다. 2008년 이후 점점 사라졌던 분노의 적대감이 완전히 부활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8. 역대 시즌




9. 역대 감독



'''FC 서울 역대 감독'''
''''''
'''국적'''
'''이름'''
'''기간'''
1대

박세학
1983 ~ 1987[31]
대행

고재욱
1988[32]
2대

고재욱
1989 ~ 1993[33]
3대

조영증[34]
1994 ~ 1996
4대

박병주
1997 ~ 1998[35]
5대

조광래
1999 ~ 2004[36]
6대

이장수
2005 ~ 2006[37]
7대

세뇰 귀네슈[38]
2007 ~ 2009
8대

넬루 빙가다
2010[39]
9대

황보관
2011
대행

최용수[40]
2011
10대

최용수[41]
2012 ~ 2016[42]
11대

황선홍
2016 ~ 2018[43]
대행

이을용[44]
2018
12대

최용수
2018 ~ 2020
대행

김호영
2020
대행

박혁순[45]
2020
대행

이원준[46]
2020
13대

박진섭
2021 ~

10. 역대 주장




11. 코칭 스태프 명단


'''FC 서울 2021 시즌 코칭 스태프 명단 '''
'''직책'''
'''이름'''
'''영문이름'''
'''국적'''
'''생년월일'''
'''감독'''
박진섭
Park Jin-Sub
[image]
1977년 3월 11일
수석코치
유경렬
Yoo Kyoung-Youl
[image]
1978년 8월 15일
코치
박혁순
Park Hyuk-Soon
[image]
1980년 3월 6일
코치
이정열
Lee Jung-Youl
[image]
1981년 8월 16일
코치
김진규
Kim Jin-Gyu
[image]
1984년 7월 14일
코치
조성용
Cho Seong-yong
[image]
1981년 6월 5일
피지컬 코치
황지환
Hwang Ji-Hwan
[image]
1986년 3월 1일
GK 코치
최현
Choi Hyun
[image]
1978년 11월 7일
'''FC 서울 2021 시즌 지원 스태프 명단 '''
'''직책'''
'''한글 성명'''
'''영문 성명'''
'''국적'''
'''생년월일'''
트레이너
박성률
Park Sung-Ryul
[image]
1972년 4월 9일
트레이너
강대성
Kang Dae-Sung
[image]

물리치료사
서성태
Seo Sung-Tae
[image]

주치의
조윤상
Cho Yun-Sang
[image]

전력분석관
신준용
Shin Joon-Yong
[image]

전력분석관
전곤재
Jeon Gon-Jae
[image]

통역
이석진
Lee Suk-Jin
[image]

장비담당관
이천길
Lee Cheon-Kil
[image]

운전기사
김용기
Kim Yong-Ki
[image]

운전기사
김영락
Kim Young-Rak
[image]


12. 선수 명단



'''FC 서울 2021 시즌 임대 선수 명단'''
'''포지션 '''
'''이름 '''
'''임대 구단 '''
'''임대 기간 '''
'''비고 '''
FW
박동진
김천 상무 FC
2020.03 ~ 2021.11
[47]
MF
정원진
김천 상무 FC
2020.03 ~ 2021.11
[48]
MF
김우홍
FC 남동
2020.06 ~ 2022.05
[49]
DF
김주성
김천 상무 FC
2021.03 ~ 2022.09
[50]
MF
정현철
김천 상무 FC
2021.03 ~ 2022.09
[51]
FW
이승재
충남 아산 FC
2021.02 ~ 2021.12

FW
오민규
양평 FC
2021.02 ~ 2021.12


13. 등번호별 상징적인 선수들


LEGENDS
FC 서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다양한 번호들을 달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중 몇은 이 팀의 복잡한 역사 때문에 팬 층이 몇 번 크게 뒤엎어져 많은 팬들에게 기억되지는 않기에 구단 차원에서의 구단의 역사에 대한 홍보와 보존이 필요한 상황이다.
볼드 처리된 선수는 현재 서울에서 뛰고 있는 선수.
'''등번호 1번'''
  • 김현태(1986~1991) - 럭키금성 황소 시절 부동의 넘버 원. LG 치타스 시절까지 선수 생활을 했고 은퇴 후 팀과 국대 GK 코치를 번갈아 가며 하는 등 국내 골키퍼 코치의 상징적인 인물. 114경기 151실점.
  • 김용대(2010~2015) - '용대사르'. 귀네슈 이후의 서울의 황금기 골문을 책임진 선수. 비록 은퇴는 울산에서 했지만 서울에서 펼친 6시즌 동안의 활약으로 인해 서울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추앙받는 레전드. 181경기 196실점.
  • 유상훈(2011~ ) - 승부차기 선방의 달인. 2011년 입단하여 군문제를 위한 상주상무 기간을 제외하면 서울에서만 뛴 선수, 2016 시즌 우승 당시 크게 활약했으며 상무에서 돌아온 후인 2019시즌에도 주전 골키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등번호 2번'''
  • 정해성(1984~1989) - 럭키금성 황소의 2번을 상징하는 선수. 구단 최초 2년 연속 주장이자 프로 구단으로는 럭키금성에서만 뛰었던 원클럽맨. 80년대 특유의 근성 있는 미드필더. 은퇴 후 5년간 LG 치타스의 코칭 스태프로 몸 담기도 했다. 118경기 2득점 4도움.
  • 다카하기(2015~2016) - 뛴 기간은 1년 6개월로 짧았지만 2015 시즌 FA컵 결승에서의 선제골, 2016 시즌 우승의 주역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일본인 선수. 46경기 3골 4도움.
  • 황현수(2014~ ) - 서울의 첫 오산고등학교 유스 시대 출신 로컬보이. 3년 간의 무명 생활을 청산하고 2017 시즌부터 주전으로 올라서기 시작했으며, 이후 4시즌 동안 꾸준히 주전급 수비수로 활약 중인 선수.
'''등번호 3번'''
  • 손현준(1995~1998, 2000~2003) - 안양 시절 스리백의 한 축을 담당했던 파이터형 수비수. 잠시 주장을 역임한 적도 있고 1999년 부산에 1년 외도한 것을 제외하면 안양에서만 경력을 쌓은 레전드. 은퇴 이후 2년 간 서울에서 코치 생활을 했다. 157경기 1득점.
  • 이웅희(2014~2019) - ‘독사’. 2014 시즌 대전에서 이적해 상무 시절을 제외하고 5년 간 서울의 준주전 수비수로 활약했다.
'''등번호 4번'''
  • 이영익(1989~1997) - 프로 생활 9년 간 오직 치타스에서만 4번을 달고 뛴 레전드. 190경기 6득점 6도움.
  • 김동진(2000~2006, 2011) - ‘황금 날개’. 8시즌의 구단 생활 내내 4번을 달고 뛰었다. 128경기 14득점 6도움.
  • 김주영(2012~2014) - 경남에서 뛰면서 슈퍼매치 양 팀의 러브콜을 동시에 받았으나 서울에 대한 애정이 강해 서울행을 택했으며, 이후 3시즌 간 헌신적인 철벽 수비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선수. 그러나 중국 이적 이후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인해 일찍 은퇴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한 불운의 아이콘. 112경기 3골.
  • 김남춘(2013~2020) - ‘춘디치’. 2013시즌 신인으로 입단해 상무 시절을 제외하고 서울에서만 7년을 뛰었던 원클럽맨. 그러나 2020 시즌 종료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서울의 봄. 구단은 2021시즌부터 김남춘 선수의 계약기간 종료 시점까지 4번의 임시결번을 선언했다. 96경기 2득점 2도움.
'''등번호 5번'''
  • 조영증(1984~1987) - 럭키금성과 국가대표 레전드 수비수. 특히 피아퐁이 오기 전까지 럭키금성의 공격을 책임지기도 한 선수. 52경기 14득점 5도움.
  • 차두리(2013~2015) - ‘차미네이터’. 국가대표 역대 최고의 오른쪽 풀백 중 하나. 독일, 스코틀랜드에서 해외 생활을 이어오다 2013 시즌 국내로 들어오면서 커리어의 첫 국내 팀으로 서울을 택했다. 2015 시즌 후반기에는 FC 서울의 주장으로서 FA컵 우승을 이끌고 커리어를 화려하게 은퇴했다. 현재 오산고등학교 축구팀 감독 역임 중. 82경기 2골 7도움.
  • 오스마르(2014~2017, 2019~ ) - ‘갓갓갓갓’. FC 서울의 리빙 레전드가 된 외국인 선수. 최용수 전술의 페르소나이자 K리그 현재 최고 기량의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불운했던 J리그 임대를 제외하고 무려 6시즌 째 서울과 동행을 이어오고 있으며, FC 서울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주장이기도 하다.
'''등번호 6번'''
  • 김진규(2007~2010, 2012~2015) - '철인 6호'. 이기형, 이민성의 뒤를 이어 6시즌 동안 6번을 달았다. 거친 플레이로 경기장 내에서 논란을 많이 일으켰으나, 팀에 보여주었던 헌신과 애정 때문에 서울 팬들이라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선수. 현재 서울 1군 코치 역임 중. 220경기 13득점 7도움.
  • 주세종(2016~2020) - 서울 팬 출신의 미드필더, N석에서 서울 응원가를 부르며 훗날 상암에서 뛰는 상상을 자주 하고는 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6시즌 드림 클럽이었던 서울로 이적해 의무 경찰 복무를 제외한 4시즌 동안 서울의 중심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현재 J리그의 감바 오사카 소속.
'''등번호 7번'''
  • 구상범(1986~1993) - 럭키금성 시절부터 LG 치타스 시절을 잇는 7번. 88 올림픽, 90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등 당대 최고의 풀백이었다. (리그와 리그컵 기준) 구단에서 158경기 15득점 12도움.
  • 이을용(2003~2004, 2006~2008) - 2002 월드컵의 주역이자, 2008 시즌 주장으로서 팀의 준우승을 함께 한 멤버. 팀에서는 27번과 77번을 오가다 7번으로 정착했다. 2018 시즌 서울의 감독 대행을 역임했다. 그리고 대를 이어서 아들인 이태석이 서울 1군에 입성했다.[52]
  • 김치우(2008~2017) - 팀에 처음 합류한 2008 시즌과 군입대로 인해 2011,2012 시즌을 제외하고 7시즌 동안 7번을 달아 구단 7번의 상징이다. 2010년대 세 번의 리그 우승과 한 번의 FA컵에 큰 공헌을 한 구단 레전드. 서울에서 180경기 11득점 17도움 기록(리그와 리그컵 기준.)
'''등번호 8번'''[53]
  • 윤상철(1988~1997) - 동대문의 사나이, 90년대를 풍미한 FC 서울 최고의 골잡이. 엄청난 기록에 비해 팬들에게 인지도가 매우 낮은 비운의 레전드이다. 팀 통산 출장 3위의 306경기, 팀 통산 최다 득점 2위의 102득점.
  • 김성재(1999~2005) - 안양 시대의 마지막 주장이자 상암 시대의 첫 주장을 역임한 미드필더. 2020시즌 5월까지 최용수 사단의 수석코치를 맡았다. 217경기, 13득점.
  • 아디(2006~2013) - ‘이지스’. FC 서울과 K리그의 역사에 길이 남을 역대급 수비수. 서울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 305경기, 20득점.
  • 신진호(2016~2018) - 짧고 굵게 간 8번. 2016년 단 3개월 만의 활약으로 팬들을 매료시켜 3년 뛴 선수보다 많은 환호를 받았다. 다만 2018년에는 상무에서 당한 탈장 부상과 팀 자체의 경기력 저하로 이전만한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40경기, 3득점
  • 기성용(2006~2010, 2020~ ) - 서울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같은 서울 출신인 이청용과 함께 2010년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중심이었던 캡틴. 2007시즌부터 주전으로 뛰기 시작해 2008년 K리그 역대 최연소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으며, 2010 시즌을 앞두고 셀틱으로 이적한 후 10년 간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2020시즌 여름에 다시 돌아오며 8번을 달게 되었다.
'''등번호 9번'''
  • 정조국(2003~2010, 2012~2015) - ‘분유캄프’. 안양 시절이었던 2003 시즌 신인왕 수상자이자, 오랜 기간 국대급 공격수로서 자리한 선수. 11시즌 동안 239경기 68득점 20도움.
  • 세르히오 에스쿠데로(2012~2014) - 일본, 스페인, 아르헨티나 삼중국적을 가지고 있던 윙어. 2012 시즌에 임대로 합류해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줬으며 전방 공격수가 힘을 못 썼던 2014 시즌에는 윤일록과 함께 팀 공격의 핵심을 맡았다.
'''등번호 10번'''
  • 강득수(1984~1989) - 구단 화려한 10번의 역사의 시작. 6시즌 동안 럭키금성에서 10번을 달며 피아퐁과 함께 최고의 호흡을 보인 '찬스메이커', 시대를 앞서간 '반대발 윙어'. 139경기 20득점 34도움.
  • 최용수(1994~2000, 2006) - 10번을 단 시즌은 4시즌에 불과하지만, 21세기 K리그 첫 우승팀을 안양으로 만든 그. 구단 소속 유일 신인왕, MVP, 감독상 수상자. 148경기 54득점 26도움. 서울 감독으로서는 한 번의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 부진의 늪에 빠져있던 팀에 중도복귀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건져내고 그 다음 시즌에 바로 3위로 끌어올리는 등 구단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거론된다.
  • 박주영(2005~2008, 2015~ ) - 서울의 영원한 10번. 신인 시절부터 '박주영 신드롬'으로 리그를 뒤집어 엎으며 K리그 역사에 기록될 데뷔 시즌을 보냈다. 현재의 서울 팬덤이 공고해진 계기를 만든 선수이기도 하다. 한국 축구로서도 역대 손가락 안에 드는 공격수였으며 돌아와서도 2015 FA컵 우승과 2016 시즌 리그 우승을 함께했고, 지금까지도 서울의 주축 공격수로 뛰고 있는 서울의 리빙 레전드.
  • 데얀(2008~2013, 2016~2017) - FC 서울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리그 득점왕을 3회 달성한 K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 다만 팬들 사이에서는 스스로 숙명의 라이벌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 행을 택한 것 때문에 심적인 레전드 반열에서는 완전히 탈락한 애증의 선수이기도 하다. 다만 여전히 선수 측에서는 서울을 떠나서도 애정을 보이고 있고, 서울에서 쌓은 커리어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인 것은 확실하다.
'''등번호 11번'''
  • 몰리나(2011~2015) - 서울에서 5년간 활약한 K리그 역대 최고 클래스의 외국인 선수. 데얀과 함께 '데몰리션 콤비'로 2012시즌 서울의 압도적인 리그 우승의 주역이었다. 한 경기 3골 3도움을 기록하기도 했고, 스콜피온 킥으로 골도 만들었으며, 2015년 FA컵 결승전에서는 코너킥에서 직접 득점하여 우승을 확정 짓는 쐐기골을 넣기도 한 서울의 레전드.
  • 조영욱(2018~ ) - '슈팅 몬스터'. 현재 한국 축구 최고의 기대주 중 하나로,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를 거쳐 FC 서울에 입단했으며, 2018 시즌 승강 플레이오프에서의 골과 2020 시즌 잔류를 결정짓는 골로 두 번이나 서울을 수렁에서 건져내면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선수.
'''등번호 12번'''
  • 박항서(1984~1988) - 럭키금성 황소의 창단 멤버. 1985 시즌 리그 우승을 이끌며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 이영표(2000~2003) - '꾀돌이'. 서울의 마지막 12번.[54] 안양 시절 뛰었던 측면 수비수이다. 국가대표에서 127경기를 출장했을 만큼 국가대표로서의 활약도 대단했던 선수이다. 2002 월드컵 이후 안양 LG 치타스를 떠나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하고 토트넘 홋스퍼 FC,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활약하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선수이다.
'''등번호 13번'''
  • 조병영(1988~1997) - 럭키금성 황소 시절부터 안양 시절까지 10시즌을 서울에서만 뛴 원클럽맨. 1997시즌에는 주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윤상철 등과 함께 리빌딩의 명목 아래 비운하게 팀을 떠나야 했던 선수이기도 하다.
  • 고요한(2004~ ) - FC 서울 역대 최다 경기 출장자이자 유일한 400경기 출전 선수 2004년,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FC 서울에 입단한 후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에서만[55] 헌신한 선수. 2016년 우라와 레즈와의 ACL 16강 연장 막판에 터뜨린 중거리 골과 몇 번의 슈퍼매치에서 팀을 구해낸 극장골, 2018년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팀의 생존을 가져온 역전골 등 굵직하고 중대한 순간마다 서울을 구해낸 선수다. 또한 암흑기인 2018년 중반부터 주장직을 맡아 승강전에서의 1부 생존과 다음 해 ACL 복귀로 구단 역사의 분기점이 될 순간을 완장을 찬 채 넘어왔다. 3년 연속 주장 연임도 구단 역사상 최초. 2020년 6월 6일 전북과의 홈 경기를 통해 구단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단일 클럽 4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등번호 14번'''
  • 김한윤(2006~2010) - 이미 나이가 가득 찬 33살의 나이로 서울로 이적해 무려 37살의 나이에도 팀의 중심적인 축으로 활약했던 선수. 거친 플레이로 타 팀 팬들의 원성의 중심에 있던 선수였으나 서울팬들에게만큼은 크게 사랑받았던 언성 히어로. 은퇴 후에는 2년 간 서울의 코치로도 활약했다.
'''등번호 15번'''
  • 박용호(2000~2011) - 안양 시절을 포함해 11년 서울에서 뛰었던 수비수. 2010 시즌부터 2년 간 서울의 주장직을 역임하며 리그 우승에 기여한 레전드이다.
'''등번호 16번'''
  • 하대성(2010~2013, 2017~2019) - ‘상암의 왕’. 주장 콜이 가장 잘 어울렸던 사나이. 전북에서 서울로 이적한 후 좋은 활약을 한 선수이다. 2번의 리그 우승과 1번의 ACL 준우승, 3번의 베스트 미드필더 수상 등의 활약을 했다. 복귀 후엔 부상으로 인해 활약이 좋지 못했음에도 전성기 시절 임팩트만으로도 서울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선수.
'''등번호 17번'''
  • 최진한(1985~1991) - 주장으로서 1990 시즌 동대문에서의 리그 우승에 혁혁한 공신을 세우며 리그 MVP까지 수상한 선수.
'''등번호 18번'''
  • 김은중(2004~2008) - 전체적으로 대전의 레전드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서울에서도 5시즌 간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의 사랑을 받은 선수이다.
'''등번호 20번'''
  • 이영진(1986~1995, 1997) - ‘악바리’. 1991 시즌에는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던, 활동량이 엄청났던 미드필더. 은퇴 이후에는 2006 시즌을 제외하고 2009 시즌까지 서울에서 코칭 스태프로 함께하며 수석코치까지 올라왔다.
'''등번호 21번'''
  • 피아퐁(1984~1986) - 럭키 금성 시절의 창단 멤버. 외국인 최초로 K리그 MVP에 선정된 태국 축구의 영웅이자 현재까지 K리그에서 유일하게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동남아 선수.
  • 양한빈(2014~ )''' - 2014년 서울에 합류해 2017년부터 주전 골키퍼로 올라와 2018 시즌에는 놀라운 활약으로 팀의 강등 위기를 막아내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골키퍼. 2021년 2년 재계약을 맺으며 서울에 남게 되었다.
'''등번호 22번'''
  • 고명진(2003~2015) - 서울에서 데뷔해 10년 간을 서울에서만 뛴 (혹은 쓰리고) 조합의 주인공. 2015 시즌 전반기에 주장을 맡았으며, 2015년 알 라이얀으로 이적하면서 서울 생활을 끝마쳤지만 여전히 팬들이 제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선수 중 하나.
'''등번호 27번'''
  • 조민국(1986–1992) - 럭키금성 시절 원클럽맨. 주 포지션은 수비수였으나 수비형 미드필더, 그리고 공격수까지도 소화했던 만능 멀티플레이어였다. 14, 13 등 여러 등번호를 받았지만 주전으로 올라서며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끈 말년 시절의 27번이 더 기억되는 선수.
  • 이청용(2004~2009) - 기성용과 함께 서울, 그리고 국가대표에서 주축으로 성장하며 쌍용 콤비를 이룬 서울의 자부심. 2009년 볼튼 원더러스로 이적해 11년간 해외 생활을 이어가다가 2020년 울산 현대로 이적하며 아쉽게도 서울과의 인연은 마무리되었다.
  • 고광민(2011~ ) - 쓰리고 조합의 일원. 공익 시절을 포함하여 햇수로 11년 째 서울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원클럽맨이다.
'''등번호 33번'''
  • 최태욱(2000~2003, 2010~2013) - 안양 시절 신인으로 데뷔했고, 2010 시즌 후반기에 다시 컴백해 1년간 지속되던 이청용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꾸면서 팀의 우승 주역이 되었고, 2012 시즌에도 주전으로 출장하면서 안양 시절까지 포함해 팀의 3번의 정규리그 우승을 지켜본 선수.
'''등번호 50번'''
  • 히칼도(2005~2007) - 비록 뛴 기간은 3시즌으로 짧았으나 2005시즌 박주영과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으며 이 시즌에 도움왕을 기록하기도 했다. 쇼맨쉽이 뛰어났던 열정적인 모습과 충성심, 한국을 떠나는 출국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등 팬들을 진심으로 대한 모습 때문에 아직까지도 사랑 받는 레전드.
'''등번호 66번'''
  • 한승규(2020) - 이 목록 중 유일한 임대생이자 유일하게 한 시즌만 뛰고 떠난 선수. 하지만 1년 동안 그 누구보다 팀에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활약도 엄청나 그 기간 동안 받은 팬들의 지지는 그야말로 매우 압도적이었다.
'''등번호 88번'''
  • 세르베르 제파로프(2010~2011) - 우즈벡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 2010 시즌 후반기에 합류해 압도적인 스탯을 쌓으며 리그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14. 역대 캐치프래이즈


전신 럭키금성-LG 치타스 시절 사료 부족으로 인한 2005년 FC 서울 시절부터 기재
  • 2005 : 그랜드 슬램 2005
  • 2006 : HIT 2006
  • 2007~현 : SOUL OF SEOUL
  • 2012 : 무공해(무조건 공격축구해)
  • 2014~2015 : FANsation
  • 2016~2017 : Champion Like Always
  • 2019 : WE ARE FC SEOUL & 팬과 함께 2019!
  • 2020 : The SEOULDAUM

15. 시설



15.1. 홈 경기장



'''FC 서울 홈 경기장'''
'''2004년~'''
''''''서울월드컵경기장''''''

15.2. 클럽하우스



'''GS챔피언스파크'''
'''GS Champions Park'''
'''준공일'''
1988년
'''위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15.3. FC 서울 팬파크



'''FC 서울 팬파크'''
'''FC Seoul Fan Park'''
'''준공일'''
2016년
'''위치'''
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 앞

16. 유니폼




17. 사건사고




18. 관련 기록




19. 팬덤





19.1. 규모와 인기




'''FC 서울 서포터즈 - 수호신 (SUHOSHIN)'''

1,000만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하는데다, 2010년대 초중반 리그 우승을 두고 항상 경쟁하던 강팀이었던 만큼 팬덤의 규모가 K리그 내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함께 가장 큰 팀중 하나에 속한다. 팬덤의 규모 또한 전국적으로 퍼져있으며, 관중동원의 포텐셜 또한 충만하여 슈퍼매치전설매치 등의 빅매치에는 3~5만명의 관중이 입장한다. 주말에 치뤄지는 리그경기에서도 만명대의 관중이 입장하는게 일반적일 정도이며, 어웨이 매치때 응원을 가는 팬들 또한 많다. 특히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 원정에서는 빨간 물결이 S석을 가득 메우는것이 또 장관이다.

19.2. 응원단


'''FC 서울 2021 시즌 응원단'''
'''장내 아나운서'''
고경섭, 배지봉
'''장외 아나운서'''
장용휘(MC휘)
'''치어리더(V걸스)'''
김다정, 박소진, 이나경, 서현숙, 허은미, 천온유, 마서연, 임수지, 정희정
FC 서울의 응원단 운영은 2010년부터 시작되었다.
2015년을 기준으로 남매 배구단인 GS칼텍스 서울 KIXX을 시작으로 현재 두산 베어스 야구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남자농구 및 아산 우리은행 위비 여자농구와 똑같은 플레이위드어스 스포테인먼트 소속 치어리더가 담당중이다.
김다정 치어리더 팀장과 박소진 치어리더 부팀장에 스타급인 부산 출신의 이나경 치어리더와 인천 출신의 서현숙 치어리더가 일반석 E석에서 응원전을 진행한다. 두산 베어스 경기일정으로 인해 멤버들의 변동은 있는 편이다.
이 응원단으로 인해 2015년 명가 라이벌인 울산 현대가 부산 출신의 최고 인기 치어리더인 김연정 치어리더의 전격 영입을 결정하기도 했다. 처용전사 홀로 응원하며 놀았던 보수클럽인 울산 현대의 응원문화를 바꾸기도 했다. 사실 김연정 치어리더 또한 FC 서울 응원단을 보고 부러워했는데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부럽지 않은 응원을 진행하고 있다.
북측광장에서 진행되는 장외이벤트가 활성화 되어있는데 MC휘의 진행으로 경기전후에 팬들과 소통하는 이벤트가 유명하다.
K리그 전체 클럽 중에서 야구 계열 응원단 문화를 도입한것은 FC 서울이 최초다.
하지만, 향후 K리그1울산 현대대구 FC 등이 이 행보에 동참하면서 꽤 효과를 보는 중이다. 아직 치루어지지 못한 서울 더비의 상대 팀이 될 K리그2서울 이랜드 FC에는 2020년 현재 정영석 응원단장이 포함된 SK 와이번스 응원단이 진출하기도 했다.

19.3. 서포터즈



서포터즈수호신은 국내 축구클럽 서포터즈수원 삼성프렌테 트리콜로, 전북 현대매드 그린 보이즈와 함께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수개의 소모임과 개별 지지자[56]들로 구성되어있다. 경기 시작 2시간 전쯤, 즉 입장이 막 시작되었을때 부터 미리 경기장에 나와서 배너를 걸고 대형기를 조립하는 등 준비를 하며, 경기 시작 50분 전쯤 골키퍼들을 필두로 서울 선수들이 몸을 풀러 나오기 시작하면 그날 선발 선수들을 한명씩 호명하며 본격적으로 응원을 시작한다.
E석 응원단과 처음에 응원이 맞지 않은 문제점이 지적되었지만 현재는 응원단과의 절충안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프타임이 끝나고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올 때 전 관중들이 핸드폰 플래시를 키고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를 부르는 시간을 갖는다.

수호신의 경우에는 경기가 승리로 끝났을 경우 N석 뒤쪽 공간에서 모여 응원가를 부르며 뒤풀이를 하는것도 특징. 서울월드컵경기장의 경우에는 가끔 선수들이 위쪽의 통로로 지나가며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때는 위의 영상에서 볼수있듯 해당 선수의 콜을 하거나, 응원가가 있다면 응원가를 불러주기도 한다.

19.4. 온라인 팬 커뮤니티 - FCSEOULITE



'''FCSEOULITE'''

19.5. 네임드 팬



20. 프런트 성향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K리그판 뉴욕 닉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FC 서울은 201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K리그 최고의 팀 중 하나였고 그에 맞는 씀씀이와 마케팅으로 팬들을 사로잡는, 그야말로 그들 말대로 ‘아시아를 선도하는 축구 클럽’이라 자칭할 만큼 프런트 스스로가 자신감이 가득하던 클럽이었다. 그러나 2016년 시즌 마지막 정규리그 우승을 기준으로 프런트는 근 4년 간 업무 능력 면에서 타팀 팬들이 봐도 한심해보이는 수준까지 추락하고 있다. 특히 강등 코앞까지 갔던 2018시즌, 그리고 안 좋은 일이란 안 좋은 일은 죄다 겪은 2020시즌을 지나면서는 K리그 최악의 무능 프런트로 국내 축구계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중이다. 이 중심에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사장을 맡은 엄태진과 그 이하 철밥통 프런트들의 폐쇄적인 운영 마인드가 한 몫을 하는 중이다.[57] 다만 2021시즌 새로운 대표이사의 부임, 프런트 내부 조직개편과 함께 팬 친화적 소통을 시도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20.1. 내부정보 통제


시즌 마케팅과 별도로 구단 내부상황과 오프시즌 현황 공개에 극도로 폐쇄적인 구단이다. 외국 구단들은 물론 K리그 다른 구단들과 비교해도 서울만큼 정보공개에 소극적인 구단이 없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축구팀들이 오프시즌에 전지훈련 연습경기를 생중계하는 일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선수단 부상자 발생이나 인앤아웃은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바로바로 개시되며 훈련 영상과 사진을 구단 공식 sns나 선수 개인 sns를 통해 팬들과 공유하는 일도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서울은 이런쪽으로 신경질적일 정도로 민감한 구단이다. 기본적인 선수단 부상자 발생현황조차 시즌 중에도 감독 인터뷰나 제3자를 거쳐나온 썰로 겨우 접하는 수준이며 오프시즌 부상발생은 말을 전혀 안해줘서 팬들이 이 선수가 딴 팀 가는건지, 다쳐서 못나오는건지 헛갈려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시즌 앞두고 팀의 GK코치와 피지컬 코치가 나가서 큰 공백이 생겼는데 일언반구 언급도 없었다. 선수단 인앤아웃도 따로 개시를 안해줘서 별도로 관련 기사 찾아보지 않으면 정확히 알 수 없는 해가 많았다.
정작 같은 스포츠단 GS칼텍스 서울 KIXX는 배구계를 넘어서 한국 스포츠 최고의 유튜브 채널이라고까지 칭송받는 킥스온에어를 운영하고 있어서 아이러니하다. FC 서울과 GS 칼텍스를 같은 프런트가 운영한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이해가 안가는 일. 다만 GS 칼텍스도 부상자 정보는 금방 올라오지 않는다.
과거에는 전지훈련 현장 사진조차도 잘 공개하지 않을 정도였는데, 최근 들어서는 훈련장 영상이나 사진의 공개에 오히려 적극적인 편이다.[58]

20.2. 구두쇠 프런트


이적료로 돈 쓰는거 정말 싫어하고 잘 쓰지도 못한다. 일단 서울이 돈을 안 쓰거나 가난한 구단은 아니다. 최악의 겨울 이적시장을 보냈다고 일컬어지는 2017 시즌에도 서울의 운영비 총액은 380억으로 전북에 이어 리그 2위였다. K리그에서 가장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전북도 서울을 운영비로 넘어선 건 AFC 챔피언스 리그를 노리고 돈을 아낌없이 떼려부은 2016년부터였다. 문제는 선수단 전력 강화 비용, 선수 영입 자금과 연봉 총액. 선수단 전력강화에 큰 돈 쓰는 걸 정말 정말 꺼린다. 빈민이 돈 아끼는 건 그저 생존 투쟁이고 자린고비란 말은 여유가 있는데도 안 쓰는 사람들에게 붙는다는 걸 상기하면 '''서울은 리그에서 그 누구도 못 따라올 자린고비 구단이다.'''
서울은 리그에서 '''운영비 대비 연봉 총액이 가장 낮은''' 구단이다. 연봉 총액 자체가 낮진 않다. 서울의 연봉 총액(93억 8,694만 원)은 2017 시즌에도 전북 다음으로 2위였다.[59] 하지만 연봉 총액 3, 4위인 제주(81억 7,901만 원)와 수원(78억 5,929만 원)은 시즌 운영비가 각각 220억, 270억으로 서울보다 169억, 110억 적었다. 100억 이상 많이 쓴 운영비에 대비하면 93억인 서울의 연봉 총액은 굉장히 낮은 편이다. 당장 연봉 총액 1위인 전북의 연봉 총액은 156억 6,197만 원으로 이것만으로도 63억 가까이 차이가 난다.[60] 2017 시즌 뿐만 아니라 2014~2016 시즌을 비교해 봐도 서울이 평균 운영비 376억 원, 평균 연봉 총액이 83억 원인 반면 우승 경쟁자였던 평균 운영비 369억 원, 평균 연봉총액이 128억 원이었으로 연봉 총액에서 차이가 컸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모기업에 부담을 심하게 주는 구단도 아니다. K리그 최고 인기 구단인 서울은 관중 수입과 광고 수입, 상품 판매 수입, 어디까지나 투자 사업이라서 수익사업인 FOS 등으로 매년 100억 이상의 자체 수익을 내며 2010년대 K리그에서 자생률이 가장 높은 구단이다.
그런데도 선수단 페이롤 증가를 신경질적으로 싫어한다. 연봉 인상에 생각 이상으로 인색하다는 말이 기자들 사이에선 공공연히 나오고 그래서 리딩 클럽이 이러면 안 된다는 주장이 일각에선 나오기도 한다. 2017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협상 마무리만 남겨놓고 이적료, 연봉 아주 조금 올려주는게 싫어서 오르샤를 놓치고 마우링요를 영입해서 외인 농사 자체를 망쳤다.
선수 이적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인당 10억 이상 쓰지 않는다. 선수를 끼워넣든, 흥정을 하든 어떻게든 해서 그 이하로 맞춘다. 이 원칙을 깼을 '''수도''' 있는 사람은 리그 레전드 반열에 오른 특급 외인 마우리시오 몰리나데얀뿐이다. 몰리나는 이적료가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아 10억에서 최대 15억까지 추정되기 때문. 데얀은 이전 문서에서 10억원 + 이정열과 김태진 트레이드라고 적혀있었으나, 실제로는 20억+이정열과 김태진이었다.[61] 2010 시즌 앞두고 영입된 김용대는 선수 붙여서 깎으려고 했으나 성남이 현금 트레이드를 고집하자 현금 트레이드를 했는데 12억 부르는 걸 어떻게든 깎아서 10억에 맞췄다. 게다가 이적료가 공개된 영입 사례만 쳤을 때 2013 시즌 앞두고 윤일록을 10억에 영입한 게 현재로선 마지막 10억 투자다. 그나마 K리그가 전반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양새라서 2010년대 초반에는 그래도 강력한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중반대에는 아직 기량이 괜찮았던 노장들을 영입해서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비공개까지 넓히면 트랜스퍼마켓 기준으로 알리바예프 한 명이 있긴 하다. 트렌스포마켓 기준 70만 유로. 한화로 거의 10억 가까이 한다. 아무리 신뢰도 가는 사이트지만 정확한 금액은 미지수. 어쨌든 구두쇠다
이후로는 '''5~6억 쓰는 것조차 극도로 꺼리고 있으며 시민구단 프런트들이 서울보다 훨씬 발 빠르게 뛰어다니고, 영입도 적극적으로 한다.''' 국내 선수는 5~6억, 외인은 10억을 마지노선으로 정해놓고 중하위권 주전, 준주전급 유망주를 3~4억 정도의 싼 가격 혹은 트레이드로 데려오거나(그나마도 1~2명) 아예 이적료가 안 드는 FA를 노렸다. 그리고 이 FA에 대한 집착이 제대로 사달을 낸 게 2017 시즌. 전성기 지난 30대 FA를 이적료 안 든다고 대거 영입하는 바람에 페이롤은 93억이 되었는데 선수단이 93억 값을 했냐면 전혀... 못하거나 아예 뛰지도 못하면서 연봉만 많이 받는 자원이 속출했고 여기에 연봉 더 주기 싫어서 버티다 외인 농사까지 망해 시즌을 말아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아먹고 맞이한 2018 시즌에도 영입 방침에 전혀 변화를 주지 않았다. 부자 클럽이 주축 선수를 뜯어가 약소 클럽이 눈물 빼는 상황, 적어도 FC 서울에선 안 나온다. FC 서울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서울특별시의 유일한 프로축구팀인 점에서 오는[62] 서울 프리미엄 덕분에 스쿼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모든 문화, 교육, 경제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된 서울공화국의 수도에 있는 유일한 1부리그 팀이 FC 서울이다보니 연봉을 다소 포기하고서라도 지방의 팀보다는 FC 서울을 선택한다는 것. 설사 선수 본인은 괜찮더라도 자식들 교육이나 부인이 서울이나 서울 근교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면 이건 꽤 큰 요소다.[63] 실제로 서울에서 오랫동안 뛴 선수들의 연봉을 들어보면 엇비슷한 레벨의 다른 팀 선수들에 적은 경우가 많다.
기자들 사이에선 히로시마 도요 카프처럼 구단 내부에 불문율로 리그 제도에 없는 샐러리 캡을 정해놓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옵션 제외하고 순수 연봉으로 쳐서 국내선수는 3억 5천, 외국인은 10억 선으로 알려져 있다.
모기업도 대기업이고, 운영비도 많이 쓰고, 돈도 잘 버는데, 그 돈이 선수단에 가는 게 아니라면? 돈이 전부 마케팅을 비롯한 다른 데로 가는 것이다. 덕분에 구단 인지도나 흥행은 잘 되고 자생률도 높지만 성적이 아쉽게 나올 수밖에 없고 성적을 원하는 팬들 입장에선 지지리 궁상이 따로 없다. 선수영입에 소극적이고 FA를 안 잡고 마케팅에만 돈을 퍼붓는 이 짠돌이 기질은 여자 배구단 GS칼텍스 서울 KIXX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으며 축구보다 인재풀이 좁은 여자 배구 특성상 성적이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비싼 돈 들여 운영하면서 이렇게 운영되는 이유는 윗선 의중도 크겠지만 GS그룹의 구성이 원인으로 주목된다. GS는 LG에서 상호 합의하에 분리되어 나온 그룹인데 LG그룹처럼 국제적으로 먹힐 사업이 없다. 사업 분야를 살펴보면 GS칼텍스의 '''정유'''산업, GS건설ㆍGS기공의 '''건설'''산업, GS리테일GS홈쇼핑의 '''유통'''산업으로 전부 철저한 '''내수사업'''이다. 정유나 건설산업은 수출이나 해외수주가 가능하다지만 해외기업이나 외국정부를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FC 서울의 성적이 마케팅적으로 큰 도움이 되기는 힘들다. 모기업이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수원 삼성 블루윙즈나 수출 집약적 사업인 자동차 사업을 하는 전북 현대 모터스와 달리 FC 서울은 '''아챔 우승해봐야 모기업에 국물 한 방울 안 떨어진다.''' 마케팅에 투자해서 자체 수익 증가시켜 구단 자생력을 높이는 건 본사 부담도 줄고 일석이조니 기꺼이 하지만 전북처럼 이적료 턱턱 던지고 선수단 연봉에 백수십억씩 때려 박으며 성적낼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정작 삼성그룹현대차그룹도 AFC에는 스폰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아시아 시장이 인구가 많고 경제성장세가 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단가가 싼 상품들 위주로 수출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술한 두 그룹은 유럽 축구팀에 광고를 넣는다거나 월드컵, NFL을 후원하는 등 단가가 비싼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북미, 유럽시장을 노린다. 삼성그룹현대자동차그룹도 이러한 마당에 GS그룹이 공격적인 투자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렵다. 예외적으로 울산 현대는 BtoB 사업인 중기계와 선박, 석유화학제품을 팔아먹는 기업이라 스포츠로 인한 홍보효과가 적지만 구단주가 엄청난 축구광으로 유명한 사람이다보니 창단 이래 돈 안쓴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고, 실제로 2020년에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재차 우승하기까지 했다.
2018 시즌 강등 위기를 겪고도 변하는게 없어서 최용수 감독이 대체 구단의 계획이 뭐냐고 공개적으로 질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맞이한 2019 시즌에는 겨울 이적시장에서 오스마르의 복귀, 알리바예프의 영입으로 영입의 물꼬를 트는줄 알았으나 별 다른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이적시장 막판 K리그 외국인 선수 역대 최고 대우[64]페시치를 임대영입하는 것으로 마감했다. 선수들의 체력 문제가 생긴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단 한명도 영입하지 않아 후반기에는 전반기에서 1위를 다투던 팀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우승 경쟁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대구, 강원, 포항 등 다른 팀들이 서로 물고 물리며 바지끄덩이 잡아당겨준 덕분에 겨우 ACL 티켓을 지켜내는데 성공한다.
2000년대 어린선수 육성정책의 결과로 쌍용투고(이청용,기성용,고명진,고요한)을 스타로 키워냈다. 고요한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해외로 진출했다.서울팬 누구도 그들이 서울로 돌아 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셋 모두 서울로 복귀하지 못했다. 스타트는 고명진이 서울이 아닌 울산현대로 복귀하며 끊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고 서울팬들이 경악할 사건이 이어진다.
2020시즌 결국 엄청난 일이 터졌다. 뉴캐슬과 상호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한 기성용이 K리그 복귀를 타진했지만 협상 과정에서 FC 서울 프런트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고, 4~8억 수준의 연봉을 제시하며 결국 기성용의 K리그 복귀가 무산되었다. 이후 기성용은 자신의 SNS에 의미심장한 글을 남기며 K리그 복귀를 취소했다. 사실 한국스포츠의 구조상 전북이나 울산과 달리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FC 서울 입장에서 10~20억 수준의 연봉을 줘야 하는 기성용의 영입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는 이 과정에서 지나친 언론 플레이와 기성용의 타구단 이적을 막은 것으로 인해 팬들의 반감을 산 것이 문제를 키웠다고 봐야 합당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FC 서울 팬들을 포함 타 K리그 팬들이 FC 서울 프런트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꽂았으며, 2020년 2월 14일 기준 FC 서울 팬들은 프런트에게 간담회 개최 요구, 시즌권 환불, 직관 거부 운동 등으로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이전에도 이적시장마다 많이 힘들어 했던 팬들은 이제까지 참아온 FC 서울 프런트에 대해 분노가 완전히 폭발해버렸다. 거기다가 이청용 마저 이전에 보훔으로 이적하기 전 FC 서울 프런트와 한번 마찰을 빚었다는 내용의 동영상이 유튜브에 업로드 되자 FC 서울 팬들은 해탈해버렸다. 그리고 이청용은 서울로 복귀하지 않고 울산 현대으로 갔다. 그러나 2020년 7월 기성용은 FC 서울로 돌아왔다.
남매인 GS칼텍스 서울 KIXX도 2014년 V 리그 우승 이후 현재까지 우승이 없다. 강소휘이소영이라는 정상급 국가대표급 토종 공격수를 보유하고도 현실은 김연경이재영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인기를 일정 내주기도 했다. 선수단 중 30대 베테랑은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2021년 시즌 시작 전 대표이사가 바뀌고, 프런트 개편이 이뤄지면서 기존과는 다르게 나상호팔로세비치 영입을 위해 돈을 쓰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 팬들은 이전보단 나아지길 기대하는 중이다.

21. 그 외


  • 2011년부터 슬로우 스타터라는 오명을 들었다. 시즌 개막부터 5월까지는 골 가뭄에 시달리면서 하위권에 머물지만 6월부터 서서히 경기력이 회복되어 7, 8월부터는 상위권으로 복귀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물론 상위권으로 복귀해도 초반에 승점을 많이 쌓지 못해 리그 1, 2위는 못하고 3, 4위정도에 머물면서 다음해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따내는데에만 그쳤다. 2011년의 슬로우 스타팅과 2013년 이후의 슬로우 스타팅은 좀 다른데 2011년에는 감독이 황보관이라 누가봐도 초반에 부진할만 했지만 2013시즌에는 압도적으로 치고나가 우승을 차지한 2012년의 전력이 대부분 남아있는데도 크게 부진했고 이 현상이 2015년까지 이어졌다.[65] 2019년에는 개막전부터 4월 초중반까지 승점을 열씸히 쌓고 여름 이후 죽 쑤는 모습을 보이며 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유니폼 어깨 부분에 패치를 다른 K리그 팀보다 많이 붙인다. 보통 K리그와 지역 연고 패치 2개를 붙이는게 기본인데 여기에 GS그룹의 계열사 패치 2개를 추가해서 4개가 들어간다.
  •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동북고 축구부를 유스팀으로 운영했고, 박주영이 교생 실습을 온 적도 있다. 2012년 계약이 만료된 이후 현재는 오산중학교와 오산고등학교에 유스팀을 운영하고 있다. 구단 유소년 팀 '리틀 FC 서울'도 2012년 말부터 'Future of FC 서울'로 이름을 바꾸고 더 박차를 가해서 운영하고 있다. FOS(Future of FC Seoul의 약자)는 전문적으로 선수를 육성하는게 아니라 유소년 레포츠에 더 가까운데, 만단위로 회원을 끌어모아 잠재적인 팬을 늘리고 수익을 창출해 구단 자생률을 높이려는 장기 프로젝트로 서울 각지에 30개가 넘는 구장을 확보해 야심차게 진행중이다. 현 회원수는 5~6천선.
  • 팀 정책적으로 젊은 선수들의 국외 진출을 장려하고 있으며 외국 진출에 성공한 선수들이 대체로 제법 큰 업적을 남기고 있다. 김동진,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이 대표적인 예. 이들은 이후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국가대표로 큰 활약을 보여주었다. 2015년 8월 28일 손흥민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함에 따라, FC 서울 소속으로만 K리거 시절을 보낸 기성용, 이청용과 더불어 FC 서울 U-18에 적을 둔 적이 있는 손흥민까지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3인이 FC 서울 출신으로 채워지게 되었다.[66] 손흥민 본인도 "K리그 클래식에서 뛴다면 서울에서 뛰고 싶다"고 하는 등 서울에 애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손흥민 10대1 인터뷰 FC 서울 볼보이였던 손흥민 “청용이형 보며 프로 꿈 키웠죠”
  • 아디(축구인), 데얀 다미아노비치, 마우리시오 몰리나 등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외국인 선수 영입의 굴곡사가 많다. 서울팬들에게 사랑받던 히칼도가 떠나고 생긴 '히칼도의 저주'는 유명하다. 2008년 무삼파와 제이훈, 2009년 케빈과 안데르손, 2010년 에스테베즈까지 3년 연속 실패를 거듭했다. 이 징크스는 2010시즌 임대 영입된 제파로프가 맹활약하면서 깨지게 됐다. 이후 2011년 마우리시오 몰리나, 2012년에는 세르히오 에스쿠데로가 들어오면서 2013년까지 강한 외국인 선수 전력을 갖추었다. 하지만 2013년이 끝나고 아디는 은퇴, 데얀은 중국으로 이적, 몰리나의 부진으로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데얀의 대체자로 데려온 하파엘[67]은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한채 6개월만에 임대 이적했으며,[68] 성남 출신 에벨톤을 데려와 공격진을 보강했지만 초반에만 조금 반짝하고 역시 마찬가지로 골 가뭄에 시달렸다. 그나마 아디의 뒤를 잇는 수비수 오스마르는 팀의 중심이 되어 좋은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69] 2015년 몰리나도 말년에 노익장으로 거듭나며 부활했고, 새로 들어온 다카하기와 대전에서 새로 합류한 아드리아노도 훌륭한 플레이로 팀을 이끌고 있으며 2016년에는 몰리나가 떠난 대신 데얀이 돌아오면서 용병 수난사도 끝나게 된 줄 알았으나..
  • 시작은 다카하기로 FC 도쿄의 하대성과 트레이드 됐는데 하대성은 현재 부상으로 2시즌을 날려먹고 있고, 대체 용병(아시아쿼터)로 영입된 이란 출신 칼레드는 아무런 활약 없이 인스타 그램에서 황선홍을 디스하며 리그를 떠났고 데얀은 최대 앙숙인 수원 삼성으로 떠나 제2의서정원이 되었고 최후의 보루인 오스마르 또한 임대 후 완전이적 조건으로 J리그 세레소 오사카로 팀을 옮겼다. 또한, 중국으로 떠났던 아드리아노는 서울이 아닌 전북으로 복귀하여 서울 팬들은 또한번 절망하게 된다. 2018년 시즌 용병들은 처참한 상황인데, 대구에서 영입한 에반드로의 경우 기본적인 볼터치에 문제가 있고 우람한 체격과 달리 몸싸움이 약한 것처럼 보여지며 우당탕탕 드리블에 연계능력 부족 등 총체적 난국이다. 히로시마에서 영입한 안델손은 골 결정력이 부족하고 독단적인 플레이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플레이 성향 때문에 주장인 고요한과 경기중 심한 언쟁을 하였고 그후 인스타 그램의 서울관련 사진을 삭제하는 유치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현재는 복구함) 또한, 중국으로 떠났던 자일을 영입할 것이라는 썰이 돌았으나 영입은 없었고 대신 제2의 데얀, 제리치를 꿈꾸며 동유럽에서 보얀 마티치라는 타켓형 스트라이커를 영입하였다. 기대를 모았던 마티치는 활약이 매우 미미하고 고대앙리 박희성에게 조차 밀리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 2011년까지 아디다스에서 용품 후원을 받았으나 2012년 부터는 르꼬끄스포르티브와 함께하고 있다. 르꼬끄와 연계해서 전국 각 르꼬끄 매장에서 유니콤과 트레이닝복 등 각종 상품을 판매하고있다. 계약할 때 4년간 80억원 이는 축구 뿐만 아니라 국내 스포츠 사상 최대 규모이다.
  • GS그룹 산하에 있는 관계로, 웹 사이트 회원으로 가입하면 FC 서울 GS&포인트 카드를 우편으로 배송해 준다. GS25나 GS 주유소에서 적립용으로 쏠쏠하게 쓸 수 있다. 그리고 신한카드와 제휴해서 유소년 축구사랑 카드도 출시했다. 신용/체크 둘 다 발급이 가능하다.
  • 바이어 04 레버쿠젠하고 친선경기를 한 적도 있다. FC 서울이나 바이어 04 레버쿠젠이나 둘다 LG에서 후원을 해줘서 그렇다.
  • FC 서울로 바뀐 후 K리그를 우승했던 해에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K리그 소속 우승팀들이 우승한 평행이론이 있다.[70] 다만 2020년에는 울산 현대가 서울의 리그 우승 없이도 ACL에서 우승하며 이것도 옛 이야기.
  • 구단 출정식에는 LG 관련 인사들도 계속해서 참석하고 있다. LG와 GS가 분할은 했지만 여전히 기업간의 관계가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LG와 GS는 서로 스포츠 구단을 나눠가질 당시 각자의 구단이 있는 리그에 새로 창단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약속했다. [71]
[image]
  • 머플러 디자인을 잘 뽑는 것으로 유명하다.

22. 직관 관련 팁



22.1. 경기장 관련


서울 지하철 6호선월드컵경기장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오면 경기장 북문(N)쪽에 도착할수 있으며, 버스 및 자차도 이용이 가능하다. 다만 지하철의 미친듯한 접근성 덕에 철도편이 가장 선호되며, 역에 사람이 많이 붐비는 시간대는 대체로 경기 시작 30분 전/경기 종료 직후이므로 혼잡을 피하고 싶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2번 출구를 통해 올라왔다면 FC 서울 팬파크가 바로 눈 앞에 들어올 것이다. FC 서울의 유니폼, 머플러, 응원도구 등 다양한 굿즈들을 판매하는 공식 팬샵이며, 바로 옆에 "FC 서울 팬카페"라고 하는 복층 카페도 있어 경기 시작 전까지 시간을 때우기 좋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있는 메가박스홈플러스, 혹은 게임방이나 찜질방 등에서 시간을 보내도 된다. 이를 지나 경기장의 N석 쪽으로 향하다 보면 많은 푸드트럭들과 서울 구단측에서 진행하는 어린이 대상 축구행사가 열리고 있기에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느끼기에도 좋다.

22.2. 티켓 구매 관련


티켓의 사전예매는 티켓링크에서 가능하다. 일반석의 경우 대체로 여유로우나 동측지정석이나 서측지정석은 좋은 자리를 얻으려면 예매를 하는 편이 좋으며, 후술할 치킨존이나 테이블석, 스카이펍의 경우는 예매가 필수라 해도 좋을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예매한 티켓은 경기장 4방면 모두에 자리한 매표소의 무인발권기에서 발급할수 있으며, 지하철역에서 내린 경우 앞서 말한 경로들을 거쳐 폭이 매우 넓은 중앙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나온다.
매년 시즌권과 티켓북을 판매하고 있다. 시즌권의 경우 성인 기준 가격대가 16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다양하며, 일반석이 가장 싸고 스카이 라운지가 가장 비싸다. 일반석 시즌권의 경우 전경기 시즌권 뿐만이 아니라 5경기/10경기 단위의 시즌권도 판매하고 있으며, VIP와 테이블석을 제외한 일반석, 동/서측지정석 좌석에서 "리틀 FC서울(LITTLE FC SEOUL)"이라는 어린이 전용 시즌권도 판매하고 있다.[72] 이 회원권을 구매한 어린이의 경우 단순히 전경기를 관람할수 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진행하는 경기전 하이파이브 이벤트 등에도 뽑힐수 있다. 시즌권 구매자에게는 각종 굿즈 지급, 전용 게이트 입장 및 재입장 가능과 같은 부가적 혜택이 있으며, 특히 가격이 비싼 VIP 좌석 시즌권의 경우 무려 선수 에스코트 참여권도 주어진다.시즌티켓 안내
티켓북은 수장~수십장 단위의 티켓 교환권을 일정 부분 할인된 가격으로 비교적 저렴하게 미리 구매해 원하는 경기가 있을때 해당 경기의 티켓으로 교환하여 쓸수 있는 형태의 입장권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를 선물로 배포하는것도 가능하기에 시즌권과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22.3. 좌석 관련


[image]
FC 서울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아시아 최대 규모의 축구전용구장 답게 관람 포지션에도 여러가지의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예매안내 일단 서울의 홈팀 관중 좌석은 N(북쪽), E(동쪽), W(서쪽) 세 방면에 자리해있으며, S(남쪽) 방면 좌석은 원정팬들에게 할당되어있다. 원칙적으로 원정팬이 S석 외 좌석에 앉는것은 허용되지 않는다.[73]
모든 방면의 좌석에 공통되는 팁을 짚고 넘어가자면, 지인들끼리 모여 직관을 하러 오는 경우도 있지만, 혼자 직관하러 오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기때문에 동행인이 있느냐 없느냐는 테이블석 같은 특수한 좌석을 제외하면 그리 신경쓸 문제가 아니다. 또한 "일반석"은 리그나 FA컵에서는 기본적으로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인 자유좌석제이나, AFC 챔피언스 리그를 치룰때는 지정좌석제로 운영된다.

E석과 N석은 "일반석"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연결되어있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다만 이름은 같더라도 사이드별 관중 구성은 조금 다른데, 골대 뒤쪽에 위치한 N석은 주로 수호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서울 서포터즈들이 자리하는 구역이다.[74] 그렇다고 그들에게만 할당된 좌석은 전혀 아니고, 수호신이라는 이름은 그냥 어떤 서포터즈 모임에도 가입하지 않은 모든 서울 팬들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기에 이곳에 앉는데 전혀 제한은 없다. 서포터즈들의 경우 N석 맨 하단을 중심으로 자리하는데, 특히 깃발을 휘두르거나, 걸개라고 부르는 큰 응원현수막 같은 것을 거는 이들이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줄을 서있다가 입장 개시와 함께 경기장에 들어와 그쪽에 자리를 잡는다. 어느 서포터즈 모임에도 가입하지 않았지만 처음보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열정적인 응원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보다 아주 조금 위쪽에 있는, 흔히 "콜리더"라고 부르는 서포터즈 응원단장과 함께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자리하는데, 콜리더의 선창에 맞춰 그에 맞는 응원가를 부르며 90분을 정열적으로 불태울 수 있다. 골이 들어갔을 경우 모르는 옆사람끼리도 서로 껴안고 같이 소리지르는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좌우로 왔다갔다 하는 "오오렐레"를 할때도 지인여부는 상관이 없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이 N석은 상암의 모든 좌석중에서도 가장 열정적인 형태의 응원이 보여지는 곳이다.
그 다음으로 E석이 있다. E석은 맨 아래부터 맨 위까지 통째로 선착순 선점인 N석과는 달리, 필드와 가까운 하단(1층)의 일부는 "동측지정석"이라고 하여 지정좌석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동측지정석은 축구를 필드와 더 가까이서 생동감있게 보고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알맞는 좌석으로, 말 그대로 '''필드 바로 앞'''에 있으며 선수의 표정과 땀까지도 생생하게 보이고 목소리도 아주 잘 들린다. 일단 좌석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N석에 비하면 조용한 편이며, E석 중앙에는 "V-걸스"라 불리는 치어리더 응원단이 자리한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들어간 층(3층)에서 계단을 더 올라 E석 상단(4,5층)으로 가면 경기장이 한눈에 펼쳐지는데, 마치 피파나 FM매니저를 하는것 같은 필드 전경이 예술이다.
W석은 기본적으로 센터의 몇몇 부분을 제외한 전좌석이 "서측지정석"이라는 지정좌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방면 좌석의 가장 큰 장점은 선수 벤치 및 선수단 출입구가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이며, 감독이 지시하러 소리치는 소리가 생생히 들릴 정도로 가깝다. 경기 종료 후 선수들에게 사인을 받거나, 선수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싶어하는 팬들이 많이 자리하며, 이와에도 가족단위의 단체관중이 가장 많이오는 좌석이다. 경기중 시야는 E석과 비슷한 편이나, 교체선수들의 웜업은 W석 앞에서 이뤄지기에 선수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싶다면 이쪽을 추천한다. W석의 중앙은 "VIP 지정석"과 "VIP 테이블석"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가격은 상대적으로 비쌀지언정 완전히 독립된 공간을 제공하여 파울로 벤투 감독이나 허정무 등이 혼자서 혹은 사단들과 함께 경기를 관람하러 올때도 이곳에 있었다. 그 양 옆에는 "치킨존"이라고 하여 푸라닭 치킨을 제공하는 별도의 테이블석이 있으며, S석에 가까운 쪽에는 가족단위 및 커플단위 관람객을 위한 "패밀리 테이블석"이 있다.

S석의 경우는 원정석이기에 서울팬들은 그리 갈 일이 없고, 역과는 반대방향에 위치한 월드컵공원 방면에 있어서 그 주변을 다니는 서울팬도 별로 없어 원정팬들은 편하게 오고갈수 있다. 시야는 N석과 똑같은데, 서포터즈들이 가장 하단에 자리하여 걸개를 걸거나 깃발을 돌리고 응원가를 부르는건 마찬가지이다. 이 S석을 얼마나 채울수 있느냐가 인기구단임을 가늠하는 척도 역할을 하기도 하며, 특히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북 현대 모터스 원정팬들은 S석 전체를 파란빛이나 초록빛으로 채우고 큰 성량으로 홈팬들에게 위압감을 주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 4개의 경기장 사이드와는 별개로, 경기장 하단좌석(1,2,3층)과 상단좌석(4,5층) 사이에 "스카이 라운지(Sky Lounge)"라고 하는, 단체실 같은 곳이 여러개 존재한다. 이곳을 이용하면 주류를 포함한 각종 음료와 다과와 함께 쿠션형 좌석, 전용 출입구, 전용 주차장 등 여러가지 혜택이 주어지며, 가족 단위, 친구 단위 일반 관중, 혹은 축구계 주요 인사들이 모여 이곳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와 같은 층에는 N-E석으로 이어지는쪽과 W-S석으로 이어지는 쪽의 / 자로 휘어지는 부분에 "스카이 펍"[75]이 자리하는데, 이곳은 좋은 시야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하이네켄 맥주와 팝콘을 무제한으로 먹을수 있는 곳이라 가격은 좀 있어도 예매 인기가 뜨겁다.

22.4. 응원 관련



N석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대체적으로 이곳의 분위기는 수호신에 맞춰서 따라간다. 경기 시작 약 50분 전부터 골키퍼들을 시작으로 서울 선수들이 몸을 풀러 경기장으로 나올때 선수콜[76]을 부르는 것으로 출발해, 양팀 선수단 입장시에 부르는 응원가인 "진군가" 부터 본격적인 응원을 시작하며, 킥오프 이후 사자후를 한 뒤 바로 이어서 절대강자를 부르고 모든 대형기를 돌리는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다. 경기 도중에는 콜리더의 선창에 따라 그에 맞는 응원가를 부르며, 골을 넣거나 하면 전원이 어깨동무를 하고 라라라를 부르며 왼쪽을 시작으로 수평으로 오고가며 방방 뛴다. 이때 부르는 응원가들의 목록은 FC 서울/응원가 문서 참조. 서울의 응원가는 대체로 음이 높아 오래 부르다보면 목이 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물을 자주 마시며 목관리가 필요하다.

경기가 승리로 끝났을 경우에는 N석 뒤쪽 공간에서 모여 응원가를 부르며 뒤풀이를 하는것도 특징. 서울월드컵경기장의 경우에는 가끔 선수들이 위쪽의 통로로 지나가며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때는 위의 영상에서 볼수있듯 해당 선수의 콜을 하거나, 응원가가 있다면 응원가를 불러주기도 한다. 이 응원가 부르기는 경기 종료 후 깃발을 흔드는 서포터즈와 북을 치고 콜을 넣는 서포터즈가 오면 시작되며, 대체로 15분정도 진행되고 마지막엔 "수고하셨습니다"라며 모두 박수를 치고 끝낸다.
그 외에 다른 좌석들은 치어리더 그룹인 V-걸스가 있는 E석 중심쪽을 제외하고는 경기 도중에는 그렇게까지 큰 응원은 하지 않는다. 다만 경기 도중 골이 들어가거나, 역습이나 골문앞 혼전으로 그럴 분위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좌석에서 다같이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는 것은 만국공통. 슈퍼매치같은 더비 매치로 3~4만명의 많은 관중이 입장하면 N석외 좌석들의 응원열기가 훨씬 고조되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2019년 6월 16일에 4:2 승리로 끝난 슈퍼매치때는 파도타기도 있었을 정도.[77]

22.5. 기타


  • 경기가 종료된 뒤에는 결과에 상관없이 서울 선수들과 감독 등 코칭스태프들이 E석-N석-W석 순으로 돌면서 홈관중들에게 인사를 한다. E석의 경우 중간에 해자가 가로막고 있어 무언가를 주고받기에는 어렵지만, N석의 맨 앞, W석의 선수출입구 부분에서는 거리가 가까워져 선수에게 사인을 요청하거나 선물을 주려면 N석과 W석을 노리는게 좋다. 또한 원정팀 선수중 예전에 FC 서울에서 뛰었던 선수가 있다면 S석의 원정팬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N석의 서울 서포터즈 자리로 와 다시한번 인사를 하고 가기도 한다. 이럴때는 서포터즈쪽에서도 웬만큼 악감정이 있는 선수가 아닌 이상 선수콜을 불러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준다.
  • 비단 서울만이 아니라 K리그 모든 팀들의 불문율같은 것이 하나 있다. 전/후반 시작 전 양팀 선수들이 모여서 화이팅을 하고 자기 포지션으로 향하는데, 주로 골대 뒤에 자리하는 축구 서포터즈 특성상 골키퍼는 팬들과 필연적으로 얼굴을 마주해야한다. 이때 골키퍼는 설령 그때 마주치는 팬들이 상대팀의 팬들이라도 최소한 목례나 얼굴 위로 하는 박수정도의 간단한 인사라도 하는게 예의이며, 팬들도 경기 잘해보자는 의미에서 이에 화답하며 마찬가지로 박수를 쳐주는것이 일반적이다.

2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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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리그 웹 사이트 공식 구단 소개.[2] 럭키금성 황소가 창단된 1983년 12월 22일이 FC 서울의 창단 연도다. 한국프로축구연맹도 FC 서울의 창단 연도를 1983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엠블럼에 표시된 연도 1983년은 구단의 창단 연도를 의미하고, 2004년은 현재 연고지인 서울 연고로 복귀한 연도를 의미한다. FC 서울은 전통적으로 엠블럼에 별을 달지 않았는데, 역대 엠블럼을 살펴보면 1985년 첫 우승이래 엠블럼에 별을 달았던 해는 2002~03년 단 2년뿐이었다.[3] 1983년부터 1986년까지는 순회 경기 시절로 형식상으로만 연고가 있던 때이다.[4] GS그룹 회장[5] GS칼텍스 서울 KIXX 구단주 대행 겸임[6] 홈, ACL, 회색 골키퍼 유니폼, GS건설의 브랜드 네임, 2005~2013년 이후 2020년부터 다시 부착[7] 홈, ACL, 회색 골키퍼 유니폼, GS홈쇼핑의 브랜드 네임,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부착[8] 리그 어웨이, 레몬색 골키퍼 유니폼[9] 2019시즌부터 KIXX에서 변경됨[10] K리그1 한 시즌 최다 승점 기록 [11]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단일 경기 최다 관중[12] 정규시즌 14경기, 챔피언결정전 1경기, 리그컵 4경기. K리그 사상 최초 시즌 50만 총관중 신기록 수립[13] 2010년 5월 5일 쏘나타 K리그 2010 10라운드 FC 서울 vs. 성남. 60,747명[14] 1위는 8회 우승의 전북 현대 모터스, 2위는 7회 우승의 성남 FC[15] 2012시즌 96점, 29승[16] 충청지역 광역연고 대전, 청주, 천안 포함이며 1984년부터 1986년까지는 모든 구단이 전국투어방식으로 경기를 하던 시절이라 실질적인 충청도 연고 기간은 1987년부터 1989년까지 3년간이다.[17] 이로인해 윙없는 3-5-2가 자리잡으면서 측면자원인 고요한과 윤일록의 입지가 굉장히 애매해졌다. 고요한은 박스 투 박스로의 전환에 계속 실패하고 풀백, 윙으로 활로를 차던차에 이런 변화가 치명적으로 작용해 2015년까지 고요암 소리를 들었고, 직선적인 윙포워드 윤일록은 에스쿠데로, 박희성과 짝을 이뤄 투톱 알바를 뛰어야 했다.[18] 정현철은 오스마르를 보좌하는 정도라면 나쁘지 않지만 전담할 수준은 안 된다, 황현수는 황선홍 재임기부터 내내 빌드업 능력 부재를 지적받았다.[19] 마케팅에 투입하는 인원 부터가 타팀과 3~5배 차이가 난다. 또한 채용, 연수과정도 철저해서 스포츠마케팅 전공한 고학력자들을 채용해 현장에서 철저하게 굴리면서 학습시킨다고 한다지만 이제는 외주 맡긴다.[20] 티켓 1장당 평균 매입 금액. 즉 티켓 1장의 가치라고 볼 수 있고, 공짜표가 적다는 의미도 된다.[21] 최고가는 인천 유나이티드가 출시한 1100만원짜리 시즌권[22] 단 수원은 처음 리그에 참여한 96년부터 고대로 라인과 김호 감독 등 압도적인 스쿼드로 이미 부산 대우로얄즈 등과 함께 최상위 인기팀이었다. 순전히 서울의 라이벌 지위로 인기팀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리고 전북도 인기팀이 된 결정적 계기는 2006년 ACL 우승과 이를 통한 현대자동차의 투자였다. 최강희 감독 이전의 전북은 비인기팀에 승점자판기에 불과했다.[23] 물론 연맹에서는 충청도 시대, 1차 서울 시대, 안양 시대를 모두 FC 서울의 공식 역사로 인정한다. 하지만 그걸 서포터즈가 따르기나 할까?[24] 상기한 서울의 비칭은 수원 서포터들로부터 시작된 명칭들이다.[25] 아이러브사커같은 커뮤니티는 슈퍼매치를 전후하여 이러한 도발전으로 여러 명의 서울 팬과 수원 팬들이 활동 정지를 당한다.[26] 하우젠컵 경기로 박주영의 해트트릭과 정조국의 골로 코너킥 상황에서 마토가 한골을 넣는데 그친 수원을 4-1로 격파했다.[27] 수원이 스플릿B로 떨어지는 바람에 2019년 슈퍼매치는 3회로 마무리됐다. 이날 서울 팬들이 건 걸개는 '''내년에 만나요'''.[28] 다만 이것은 서울과 수원이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을 정도로 싫어하기 때문이고, 실제로는 분위기로 보나 뭘로 보나 슈퍼매치가 더 격렬하고 관심을 끄는 매치이다. 게다가 경인더비도 처음에는 서포터들에게 언론이 만들어준 더비라는 소리를 들었다. 인천 관중동원력이 수원보다 훨씬 약한데도 지금의 위상을 갖춘데는 언론의 지원사격 덕이 컸다.[29] 할로윈데이이자 차두리의 은퇴경기.[30] 이와 대조되게 FC 서울의 오랜 라이벌인 수원 삼성의 팬들은 김남춘 선수의 급작스런 사망을 전해지자 라이벌 의식은 잠시 접어두고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했으며, 경기장 밖 추모공간에도 국화와 머플러를 두고 가는 등 추모 행사에도 동참했었다. 그리고 경기 후에는 수원 삼성의 팬들조차 인천 선수단과 서포터들의 행태를 보고 분노했다. 서울과의 관계를 떠나 대부분의 국내축구 팬들이(그게 서울과 적대적인 수원, 전북, 대구, 강원 등의 팬이라도) 상암 분향소 방문과 응원팀 경기 시 추모걸개 설치를 통해 사고를 기렸는데 경기장에 입장한 인천 팬들만 이를 저버린 것.[31] 1985 축구대제전 우승.[32] 1988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33] 1990 한국프로축구대회 우승.[34] 구단 최초의 선수 출신 감독.[35] 1998 삼보체인지업 FA컵 축구대회 우승.[36] 2000 삼성디지털 K-리그, 2001 포스데이타 수퍼컵 우승.[37] 2006 삼성 하우젠컵 우승.[38] 구단 최초의 외국인 감독.[39] 2010 포스코컵, 2010 쏘나타 K리그 우승.[40] 구단 선수 출신 감독대행.[41] 구단 선수 출신 감독.[42] 2012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5 KEB 하나은행 FA CUP 우승.[43] 2016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우승.[44] 구단 선수 출신 감독대행.[45] 구단 선수 출신 감독대행.[46] 구단 선수 출신 감독대행.[47] 군 입대[48] 군 입대[49] 산업기능요원[50] 군 입대[51] 군 입대[52] FC 서울 역사상 처음으로 아버지와 아들에 걸쳐 2대가 서울 선수가 된 케이스.[53] 윤상철과 아디라는 FC 서울 역대 최고의 레전드, 그리고 기성용이 공유하게 된 번호이다 보니, 서울 팬들 사이에서 레전드를 상징하는 번호로 자리잡게 되었다. 때문에 팬들은 서울에서 평범한 커리어를 이어가는 선수에게 등번호 8번이 가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54] 이영표가 PSV로 떠난 이후, 서울의 서포터들을 위해 12번을 암묵적으로 결번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55] 중학교 중퇴로 인해 병역의무가 면제됐기 때문에 다른 원클럽맨들이 가지고 있는 상주 상무 경력조차 없이 말 그대로 서울에서만 뛰었다.[56] 어느 소모임에도 가입하지 않은 서포터즈[57] 단 서울을 예전부터 봐왔던 팬들이라면 프런트의 폐쇄성과 고압적인 성향은 다 알고있던 부분이었다.[58] 이는 프런트도 프런트지만 최용수 감독이 훈련장에서 영상을 찍는 걸 극도로 꺼려하는 성향이 더 많이 반영되었다. 최용수 감독 사퇴 이후 훈련 영상 공개가 확연히 늘어났다.[59] 참고로 이 중에서 13억이 데얀의 연봉이었다. K리그에서 4번째(데얀 앞에는 김신욱, 김진수, 에두만 있었다.)로 비싼 선수였던 데얀이 연봉을 깎을 생각을 안 했던 것도 재계약 포기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60] 실제로는 차이가 더 난다. 각종 재정 통계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K리그는 '''리그 종료일 기준 등록 선수만으로''' 각 구단별 연봉 총액을 계산하는데 이러면 여름 이적시장에서 떠난 선수는 분명히 뛰었는데 연봉 총액 계산에선 빠진다. 2017년 여름 전북에서 세레소로 이적한 김보경은 전북에서 거액 연봉을 받았음에도 시즌 후에 내놓은 연봉 총액 합계에서 빠졌다.[61] 데얀이 서울로 온 2008년에 20억이면 엄청 쓴 거다.[62] 서울이랜드 FC가 신설되기는 했지만 아직 2부리그에 있고 이랜드그룹의 규모가 GS그룹보다 작다보니 아무리 FC 서울이 연봉이 짜도 서울이랜드 FC에 비할바는 아니다. 아직까지는[63] 이때문에 연고지 이전 당시 정조국이 연고이전에 찬성하면서 팬들과 마찰을 일으켰던 이유도 자기 집이 서울에 있어서 좋다라는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어서다.[64] 페시치의 추정된 연봉은 무려 '''20억(!!!)'''이다.[65] 이게 제일 심했던 시즌이 2013년, 2015년이었다. 2013년에는 4월 말까지 강등권에 위치할 정도였고, 2015년 초반에는 리그-아챔 통틀어 경기당 득점이 0점 아니면 1점만 나와서 2진법 축구, 디지털 축구란 비아냥을 들어야했다.[66] 다만 손흥민은 프로팀 데뷔가 아닌 동북고 시절 1년만 재학하고 바로 함부르크 SV으로 넘어간 사례라 이청용, 기성용만 FC 서울 출신 프리미어리거로 인정하고 손흥민은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67] 영입했을때부터 가루 단위로 까였다. K리그 최고의 공격수에 몬테네그로 대표팀까지 했던 데얀을 대체한다는게 고작 브라질 하부리그에서 반짝 활약한 무명선수를 데리고 왔으니 팬들 입장에선 기가 막힐 노릇. 게다가 그 전에 불가리아 대표팀 공격수 출신 보지노프가 서울 이적설이 나와서 많은 기대감을 줬지만 루머로 끝난 바람에 아쉬움이 매우 컸다.[68] 그래도 체격이 탄탄하고 좋으니 믿어보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FA컵에서 2군을 내보낸 인천을 상대로도 OME급 플레이를 보여주는 바람에 결국 그를 감싸주는 팬들마저도 등을 돌렸다.[69] 2016 시즌에는 FC 서울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주장까지 맡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70] 2010년 FC 서울 K리그 우승-성남 일화 천마 ACL 우승, 2012년 FC 서울 K리그 우승-울산 현대 ACL 우승, 2016년 FC 서울 K리그 클래식 우승-전북 현대 모터스 ACL 우승.[71] 그래서인지 여자농구리그를 제외하고 매각설이 나올 때 LG랑 GS는 일단 배제된다. 분할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고작 스포츠 구단 인수로 서로간의 관계를 흔들 LG랑 GS도 아닌지라.[72] 일반석의 경우 청소년 전용의 시즌권도 있다.[73] 원정팬이더라도 홈팀 좌석에서 일반 복장을 입고 앉아 조용히 경기만 본다면 아무도 모르니 상관없지만, 만약 원정팀의 응원용품(유니폼, 머플러 등)을 사용하는 것이 적발되면 경비원들에 의해 퇴장당할수도 있다.[74] N석에만 수호신들이 위치한 이유는 과거에 N석은 응원석, E석은 일반석이라는 이름으로 구역이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응원석(N석)에는 당연히 응원을 하는 수호신들이 위치하고 있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일반석으로의 통합 이전에는 두 구역들을 구분하면서 구역 간의 이동을 막기 위한 철 펜스가 있었으나, 일반석으로 통합된 후 철거되었다.[75] 2021년 기준 공식 명칭은 "한돈-하이네켄 스카이펍" 이다.[76] (콜리더의 이름 석자 선창) - 박수 3번 - 이름 석자 후창 x2[77] 근데 이걸 하다가 추격골을 먹혀서 좀 뻘줌해졌을만도 한데, 그전까지 이미 4:1로 이기고 있던 상황이라 "서비스!"라는 콜을 하면서 비웃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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